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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서 3~4일 먹고 자고…'농박' 떠나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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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34)

부산 기장군 철마면 다복솔팜스테이마을을 찾은 성북초등학교 학생들이 전통방식의 벼 탈곡 체험을 하고 있다. 조진옥 기자

부산 기장군 철마면 다복솔팜스테이마을을 찾은 성북초등학교 학생들이 전통방식의 벼 탈곡 체험을 하고 있다. 조진옥 기자

혹시 ‘농박’이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지. 농가에서 숙박하는 것을 농박이라고 부른다. 농박은 농가민박의 준말로, 영어로는 팜스테이(Farm Stay)라 한다.
농박은 일반 민박과 다르다. 농가에서 민박하면 농박이 된다. 농민은 자기 집에 여유 있는 방을 숙박업 허가를 받지 않아도 숙박용으로 내줄 수 있어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 오지의 농가에서 며칠이고 묵으면서 시골 생활을 경험하는 유행이란다. 나도 지난주 단양군의 어느 오지 마을에 다녀 왔다. 소백산 깊은 곳에 있는 그 마을을 어떻게 알았는지 도시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펜션이 아닌 허름한 민가인데도 그렇다.

지난주에 임업진흥원의 주관으로 산촌생태마을 워크숍이 열렸다. 나에게 고객 만족 강의를 요청할 만큼 산촌 골짜기에 찾아오는 손님을 어떻게 맞이할 건지가 이슈가 될 정도다. 산골 마을 주민들이 마을 살려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지난 국정감사에서 산골 마을에 수천억 원을 쏟았는데도 성과가 없다고 지적됐다. 성과의 기준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산촌 주민들은 섭섭하단다.

있는 그대로를 즐기려는 여행 문화

얼마 전엔 한 숙박업자가 농박 제도를 악용하다 적발됐다는 기사도 나왔다. 정부에선 원래 농박 사업을 15년 전부터 장려해 왔다. 숙박사업을 해 소득을 좀 더 올리라는 취지에서 농가가 게스트룸을 만들면 보조금도 주었다. 그래도 한동안 농박은 펜션이나 콘도, 리조트에 밀렸다.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오지로 홀로 또는 두어 명이 농촌이나 어촌의 일상을 즐기는 것으로 여행 트랜드가 바뀌면서다. 농박하러 왔다가 아예 귀촌하는 도시인이 늘고 있다. 농박 컨설팅해 주는 기업도 생겼다. 경기도 남양주시에는 농촌 체험 카페도 생겼단다. 여행 문화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즐기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농촌진흥청 감귤연구소에서 어린이들이 감귤따기 체험을 하고 있다. [뉴스1]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농촌진흥청 감귤연구소에서 어린이들이 감귤따기 체험을 하고 있다. [뉴스1]

2년 전인가 농림축산식품부의 후원 아래 농어촌공사 직원과 함께 전국의 우수 농박 현장 심사를 진행했다. 확실히 지역별로 농박 문화가 달랐다. 제주도와 강화도는 매우 고급스럽다.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제주도엔 비용을 많이 들인 건물들이 지어졌고, 강화도엔 여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집들이 들어섰다. 충청도와 전라도는 농촌 주택과 한옥이 농박으로 많이 사용됐다.

오래전부터 펜션 바람이 불었고 최근엔 동계올림픽을 치른 강원도는 농박이 아주 깔끔하고 특색이 있다. 스키장 손님을 받는 콘도나 리조트와 경쟁을 하다 보니까 운영도 세련되게 한다. 애완동물을 동반한 손님을 위해 방마다 진공청소기를 벽에 내장한 펜션도 있다.

태백이나 정선엔 예전의 탄광촌 분위기를 살린 농박이 있고 인제나 양구는 화전민이 살던 오두막을 재현하는 곳도 있다. 바다가 인접한 곳은 어촌 마을 분위기를 살린다. 삼척에 가면 해상 케이블카가 있는 장호항이 있는데, 마을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어부의 집이 그대로 민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왜 갑자기 짧게는 이삼일부터 길게는 한두 달까지 농촌의 정서를 경험하려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을까. 아마도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김태리처럼 시골에서 스트레스 없이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작용한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차승원과 유해진이 나왔던 ‘삼시세끼’라는 TV 프로그램도 영향을 미쳤지 싶다. 하루 종일 먹을 궁리만 하고 식재료 구하고 요리하고 먹는 삶이 부러웠던 게 아닐까.

슬로우 라이프 욕구 건드린 영화 ‘리틀 포레스트’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정부가 그동안 수많은 귀농 정책을 펴 왔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편만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중앙포토]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정부가 그동안 수많은 귀농 정책을 펴 왔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편만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중앙포토]

도시의 스트레스를 피해 아주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영화나 TV프로그램을 통해 분출된 것이란 분석은 흥미롭다. 다들 슬로우 슬로우 하면서 빈둥빈둥, 뒹굴뒹굴 거리며 살고 싶은 것이다. 그건 인간의 본능이다.

농박을 하다가 귀농·귀촌한 사람이 꽤 있다. 특히 젊은 30대가 여행 갔다가 농박 체험을 하고, 마침내 눌러앉은 사람들이 있고 50대가 농촌으로 여행을 갔다가 눌러앉기도 하고 노후생활을 시골에서 하겠다고 결정한 은퇴자도 있다. 어찌 보면 다소 충동적으로 보이지만 만족도가 높단다. 역시 저지르기 잘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정부가 그동안 수많은 귀농 정책을 펴 왔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편만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농박으로 인해 농촌에도 많은 사람이 몰려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한다. 사람들 웃음소리가 들리니까 마을이 마을 같다고 좋아하는 노인들을 만난 적이 있다. 농박과 같은 농촌관광 활성화가 고령화 문제의 해법이라고 진단하는 전문가도 있다.

농박이란 말이 일본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의 민박을 일본인은 민숙(民宿)이라고 부른다. 아무튼 일본은 농박 장려 정책을 펴며 고령화와 같은 지역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밀려드는 외국 관광객을 호텔이나 료칸이 수용을 못 하자 농박으로 유인하고 있다.

주민들이 호텔 직원처럼 일하는 일본 미이지구 마을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 미이지구라는 마을은 전체가 하나의 호텔이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 마을이 쇠락하자 지자체와 주민들이 나서 빈집을 객실과 프런트, 레스토랑으로 바꾸었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 호텔 직원처럼 일한다. 그렇게 하니 여행객의 발길이 끊겼던 이 마을은 이제 한 달 1000명 이상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노인을 위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젊은이들도 취업하러 모인단다. 일본 정부는 농박 활성화 예산으로 50억엔을 책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 농어촌 특례법을 만들어 농박을 활성화하고 있지만 규제가 여전히 심하다. 농업인이 아닌데 농박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 그런 것 같다. 이미 농박 자체가 특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는 도시와는 달리 대문을 열어놓고 가족처럼 지내는 농촌의 따뜻한 인심에 끌려 도시인이 몰려오나 보다. 올겨울엔 농박을 한번 체험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농가에서 자 본 사람만이 아는 특별한 맛이 있다. 가끔은 농촌에서 다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쉬어 보자.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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