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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어둠 까발리겠다"···수퍼극우와 中재벌 의기투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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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연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오른쪽)와 궈원구이 정취안홀딩스 회장. 두 사람은 시진핑 중국 지도부의 권력 남용과 비리를 밝힐 펀드 설립을 발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연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오른쪽)와 궈원구이 정취안홀딩스 회장. 두 사람은 시진핑 중국 지도부의 권력 남용과 비리를 밝힐 펀드 설립을 발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수퍼 극우’와 ‘핵폭탄 입’이 만났습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한 스티브 배넌(65)과 궈원구이(郭文貴·51) 이야기입니다. 배넌은 한때 ‘트럼프의 책사’로 불렸던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이지요. 궈원구이 정취안(政泉)홀딩스 회장은 중국 부동산 재벌로서 2014년 미국으로 도피한 뒤 중국 지도부의 비리를 폭로해온 인물입니다.

'트럼프의 책사' 배넌과 망명한 中재벌 궈원구이 #中지도부 비리 파헤칠 1억 달러 규모 펀드 설립 #"왕젠 HNA 회장 의문사 등 배후 세력 밝혀낼 것"

트럼프 백악관의 대표적인 반중(反中) 인사였던 배넌과 중국에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궈원구이가 손잡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이날 회견에서 1억 달러(약 1100억 원) 규모 펀드 계획을 밝혔습니다. 펀드 이름은 ‘법의 지배’(Rule of Law). 즉 무법적으로 저질러진 범죄를 조사하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거지요. 누가 저지른? 시진핑 (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휘하 지도부가 타깃이라고 합니다.

과연 반중 극우와 핵폭탄 조합이 할 수 있는 대담한 제안입니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진상규명할 대상도 공개했습니다. 지난 7월 프랑스 출장 중 절벽 추락 사고로 사망한 HNA(중국명 하이항)그룹 왕젠(王健) 회장 사건입니다. 사건 당시에도 중국 공안에 의한 타살이라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흐지부지 묻히고 말았지요.

배넌은 이 사건을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에 비유했습니다. 거대한 배후세력이 있다는 거죠. 궈원구이도 “왕 회장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살해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연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오른쪽)와 궈원구이 정취안홀딩스 회장. 두 사람은 시진핑 중국 지도부의 권력 남용과 비리를 밝힐 펀드 설립을 발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연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오른쪽)와 궈원구이 정취안홀딩스 회장. 두 사람은 시진핑 중국 지도부의 권력 남용과 비리를 밝힐 펀드 설립을 발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실 궈 회장은 앞서 HNA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상태입니다. HNA 그룹 지분을 29% 보유했던 의문의 대주주 관쥔(貫君)이 실은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의 사생아라는 등 핵폭탄 주장을 해서죠. HNA 급속 성장의 비밀을 알고 있던 왕 회장을 이제 중국 당국이 제거했다는 건데, 궈는 이날 회견에서도 이를 입증할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궈의 주장이 영 터무니없이 들리지 않는 것은 그가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 핵심인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궈는 정·재계 고위급 인사를 불러놓고 파티하는 것을 즐겼고 이런 인맥을 활용해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하지만 갖은 비리에 얽히면서 결국 미국으로 도피했고 현재 뇌물·사기 등 혐의로 인터폴 적색 수배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홍콩법원은 궈의 중국 내 11억 달러(1조2500억 원) 자산에 동결 조치를 내렸다고 합니다.

약이 바짝 오른 궈가 사생결단으로 이 같은 반중국·반시진핑 프로젝트를 벌이는 거야 그럴 수 있지요. 그런데 배넌은 거기에 왜 같이 팔 걷은 걸까요. 두 사람은 배넌이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일할 때부터 알게 됐다고 합니다. 배넌이 백악관에서 밀려난 후에도 종종 만난 걸로 보이고요. 궈는 자신의 트위터에 배넌의 팔짱을 낀 사진 등을 올리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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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도피 중인 중국 부동산재벌 궈원구이가 2017년 10월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와 친분을 과시하며 트위터에 올린 사진. [사진 트위터]

미국에 도피 중인 중국 부동산재벌 궈원구이가 2017년 10월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와 친분을 과시하며 트위터에 올린 사진. [사진 트위터]

배넌은 이날 회견에서 “중국 정부 지도부들은 경제 성장에 뒷받침이 되기보다 무모하다”면서 “내게 중국의 희망으로 보였던 인물들이 사라지고 죽고 자살하고 수감되고 자산을 몰수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무슨 인권운동가인 양 중국 정부를 비판했는데요, 실은 ‘미국 우선주의’에 사로잡힌 극우 인사로서 중국에 대한 근원적 적개심을 드러낸 거라고 봐야합니다. 배넌은 최근의 한 포럼에서도 “미국은 중국과 경제 전쟁 중”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5년 간 미국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국이 미국과 어깨 겨누는 G2로 성장하게끔 내버려둔 것을 말하는 거죠.

배넌 본인으로선 새로운 일거리 창출에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그는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 후원에 여념이 없는데요, 문제는 제대로 된 투자 자금을 모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런 와중에 억만장자 궈원구이와 뜻이 맞은 겁니다. 펀드 회장직을 맡게 된 배넌은 “무보수 봉사”라면서 자신은 단지 “사실(facts)을 밝히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계사적인 수퍼 빌런(악당)이 되겠다”는 배넌이 '중국의 눈엣가시' 궈원구이와 함께 어떤 '사건'을 벌일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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