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외래종에 점령당하는 한반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천권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천권필 환경팀 기자

천권필 환경팀 기자

“이 깜탱이 때문에 못산다니까.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어요.” 지난달 16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양봉 농가. 서상돌(81)씨는 꿀벌통 옆에서 잠자리채로 연신 무언가를 잡고 있었다. 그가 깜탱이라 부르는 벌은 외래종 ‘등검은말벌’이다.

2003년 부산항에서 처음 발견된 등검은말벌은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전국으로 확산했다. 15년 만인 최근에는 강원도 화천·양구 등 비무장지대(DMZ) 인근에서도 발견됐다. 동남아 원산인 등검은말벌은 먹이의 70%가 꿀벌이어서 ‘꿀벌 킬러’로 불린다. 서씨의 양봉 수익은 등검은말벌 때문에 몇 년 새 절반 이상 줄었다. 서씨는 “10여 년 전에는 1~2마리씩 간간이 보였는데 지난해 여름부터는 하루에 1500여 마리씩 잡을 때도 있다”며 “정부나 누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양봉 농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달 16일 경남 창원의 한 양봉장에서 서상돌씨가 외래종 등검은말벌을 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달 16일 경남 창원의 한 양봉장에서 서상돌씨가 외래종 등검은말벌을 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외래종 침입 피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외래종은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교란해 토착생물의 생존을 위협하고, 각종 병원균을 옮기기도 한다. 특히 한국처럼 무역이 활발한 국가일수록 외래종 유입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국내로 유입된 외래생물은 2009년 894종에서 2013년 2167종으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붉은불개미보다 독성이 12배 강하다는 서부과부거미가 유입된 사실이 최초로 확인됐다. 대구의 한 군부대에서 군수물자를 하역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지난달에도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한 컨테이너에서 붉은불개미가 5900마리나 나왔다. 두 곤충 모두 컨테이너를 통해 국내에 유입됐다는 점에서 외래생물 검역 체계의 허술함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래종의 침입에 따른 피해가 커지자 환경부는 2014년 6월 ‘제1차 외래생물관리계획’을 내놨다. 생태계교란생물을 2014년 18종에서 올해 말까지 28종으로 확대 지정하는 등 외래종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생태계교란생물로 지정되면 수입 등을 할 경우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환경부가 5년 동안 생태계교란생물로 지정한 건 붉은불개미 등 3종에 불과하다. 등검은말벌도 이제야 생태계교란생물 지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전형적인 뒷북 행정이다.

침입외래종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크다. 미국에서는 침입외래종에 따른 피해액과 관리 비용이 연간 1380억 달러(156조원)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도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외래생물 침입을 저지할 수 있는 범정부적인 콘트롤타워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천권필 환경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