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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움직이는 대륙···인도 연간 5㎝→16㎝ 빨라져,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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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4일 파키스탄 북부에서 촬영된 히말라야 산맥의 모습. 히말라야 산맥은 판과 판이 충돌한 결과물이다. [AP=연합뉴스]

2004년 5월 4일 파키스탄 북부에서 촬영된 히말라야 산맥의 모습. 히말라야 산맥은 판과 판이 충돌한 결과물이다. [AP=연합뉴스]

연간 2㎝씩 인도는 북쪽으로 ‘행진’을 하고 있다. 인도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대륙은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세계 최고(最高)를 자랑하는 히말라야 산맥과 남미의 ‘척추’인 안데스 산맥은 땅의 움직임이 빚어낸 걸작이다.

지구의 땅껍질을 의미하는 지각(Crust)을 포함해, 지하 200㎞까지를 의미하는 ‘판(Plate)’은 땅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지하 100㎞까지는 단단한 암석으로, 이후 200㎞는 연약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0개의 판이 지구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약 5500만년 전부터 유라시아 대륙판과 부딪히기 시작한 인도판도 그중 하나다. 연간 5~16㎝의 속도로 바다를 건너와 충돌을 일으켰고 두 판이 지각을 밀어 올려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을 형성했다.

생물의 사체 등 유기물이 만든 ‘퇴적물’, 판의 속도를 조절하다

플랑크톤 등 해양생물의 사체로 구성되는 원양성 퇴적물이 판의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사진 Randolph Femmer, USGS]

플랑크톤 등 해양생물의 사체로 구성되는 원양성 퇴적물이 판의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사진 Randolph Femmer, USGS]

움직이는 것은 자연히 속도를 갖는다.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 연구진은 지구 상의 생명체가 판의 이동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플랑크톤을 비롯한 생물의 사체 등으로 구성된 ‘퇴적물’이 판의 이동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지구 및 행성 과학 저널(Earth and Planetary Science Letters)’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바람ㆍ물ㆍ빙하 그리고 조개를 비롯해 현미경으로만 관찰할 수 있는 미세한 유기체의 사체도 해저에 축적돼 퇴적물이 된다”며 이 퇴적물이 쌓이면 하나의 판이 다른 판 아래로 침강하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밝혔다.

미끄러운 원양성 퇴적물, 판에는 ‘윤활유’

퇴적물이 쌓이면 이동에 방해가 될 텐데 왜 판의 속도는 더 빨라지는 걸까. 이진한 고려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해양생물 등의 사체로 이뤄지는 ‘원양성 퇴적물(Pelagic Sediment)’은 대부분 미끄러운 진흙 형태로 축적되기 때문에 판이 이동하는 속도를 빠르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은 텍사스 오스틴대 연구진의 설명과도 일치한다. 연구진은 “침전물이 두 개의 판 사이에서 이른바 ‘윤활효과’를 만들어내, 한 판이 다른 판 밑으로 침강하는 속도를 빠르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그간 거대하게만 여겨왔던 판이 상대적으로 미미한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판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판 자체가 받는 힘과 규모만을 중요시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진은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진행된 연구를 바탕으로 “판은 우리 생각보다 더 약하고 민감하다”며 판의 이동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소에 대해 연구를 진행해왔다.

판의 속도, 느렸다 빨라지기를 무한히 반복

퇴적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쌓인다. 그러면 판의 이동도 계속해서 빨라지기만 하는 걸까. 아니다. 연구에 참여한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의 휘트니 베르 교수는 “판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 것’은 아니다”며 이 속도는 복잡한 과정(complex feedback loop)을 거쳐 느렸다 빨라지기를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판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퇴적물이 축적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줄어든다. 경계면에서 판이 더 빨리 침강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으니 퇴적물의 양도 줄어든다. 퇴적물의 양이 줄면 윤활효과도 줄어들어 판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두 판이 서로 만나 산을 형성하고 밀어 올리는 작용이 느려지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바람이나 물에 의해 퇴적물이 쌓일 시간의 여유가 생기게 된다. 퇴적물이 서서히 쌓이면, 다시 경계면에서 판이 침강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인도, 적도 헤엄쳐 오며 생물로 가득 차

연구진은 인도판을 예를 들어 이를 설명했다. 인도가 따뜻한 적도를 지나 북상하며 생물들로 넘쳐나게 됐고, 그만큼 유기물에 의해 퇴적물도 많이 쌓였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인도의 '행진(March)'은 연간 5㎝의 속도였지만 빠르게 높아져 연간 16㎝가 됐다”며 “유라시아 판과 충돌하고 나서야 비로소 속도를 늦췄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생명체가 나타나기 전에는 판의 움직임도 매우 달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연구를 진행한 톨스튼 베커 교수는 “판의 지질학적 역사에 관한 문제가 점점 더 명확해 지고 있다”며 현재 발생하고 있는 대륙의 이동도 결국 생명체와 상호작용하는 것이라는 데 연구의 의미를 부여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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