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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 미래 꿈꾼다면 시험위주의 과학공부 방법부터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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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크리스토퍼 컬른 영국 캠브리지대 니덤연구소 교수 

“세종대왕의 시대는 한국 전통 과학기술의 황금기였습니다. 전세계에 한국의 과학문명을 알리는 순회전시를 제안합니다.”

영국 캠브리지대 니덤연구소의 크리스토퍼 컬른(72) 교수가 지난 14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개막한 한국과학문명관에서 천체관측기구 소간의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과천과학관]

영국 캠브리지대 니덤연구소의 크리스토퍼 컬른(72) 교수가 지난 14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 개막한 한국과학문명관에서 천체관측기구 소간의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과천과학관]

- 벽안(碧眼)의 노(老) 과학자가 한국 전통과학의 가치를 말했다. 영국 캠브리지대 니덤연구소의 크리스토퍼 컬른(72ㆍ사진)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한국과학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해서도 말했다. 한국 학생들의 과학실력은 뛰어나지만, 시험 위주의 주입식 교육 때문에 과학에 대한 열의가 낮다고 꼬집었다. 한국이 정말 성공적인 미래를 꿈꾼다면, 과학 공부의 방법부터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컬른 교수는 지난 14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린 한국과학문명관 개관 및 전통과학 포럼에 기조연설자로 나와 이 같이 말했다. 컬른 교수는 과학 사학자다. 오랫동안 중국 과학사와 함께 한국의 전통과학도 연구해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공이 중국과학사라 들었다. 한국의 전통과학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넓게 말하자면 중국의 과학기술사를 연구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중국 천문학사에 집중하고 있다. 니덤연구소를 설립한 조지프 니덤(1900~1995, 영국의 생화학자 겸 과학사학자)의 저서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읽으면서, 동아시아 나라들 중 (중국뿐 아니라) 한국이 과학에 일관되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조선의 관상감(觀象監: 천문ㆍ지리ㆍ역수(曆數) 등에 관한 일을 담당하던 관청)에 대한 역사를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에서 진행 중인 한국의 과학과 문명 프로젝트에 영문 에디터로 참가하면서 한국 전통과학은 나의 가장 큰 연구분야가 됐다.”  
한ㆍ중ㆍ일의 전통과학을 비교하자면
“동양에서의 천체 관측은 황제의 권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천체를 연구해 절기를 읽고 달력을 만들어 백성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런식으로 전통과학이 발전해 나갔다. 한국은 그런 중국의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한국만의 것으로 변형ㆍ발전해 나갔다. 일본은 달랐다. (역사적으로) 천황과 쇼균 중 누가 실제로 나라의 최고 책임자인지 모호했다. 따라서 천체관측에 대한 연구도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천황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기 시작한 건 19세기 메이지유신(明治維新ㆍ1868) 이후다.”  
크리스토퍼 컬른 교수는 영국 캠브리지대의 동아시아과학사 전문연구소인 니덤연구소의 소장을 지냈다. 그의 전공은 중국천문학사이지만, 중국은 물론 한국의 과학기술사를 연구하고 있다. [사진 국립과천과학관]

크리스토퍼 컬른 교수는 영국 캠브리지대의 동아시아과학사 전문연구소인 니덤연구소의 소장을 지냈다. 그의 전공은 중국천문학사이지만, 중국은 물론 한국의 과학기술사를 연구하고 있다. [사진 국립과천과학관]

한국의 옛 천문도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한국과학문명관에 전시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각석(刻石)은 현존하는 것 중 세계에서 둘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다. 천체의 별 이미지를 이렇게 그려놓은 것은 동아시아에서밖에 볼 수 없다. 그간 인터넷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와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돌에 새긴 밤하늘의 그림으로, 조선 태조 4년(1395)에 만들어졌다. 국보 제228호로,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석각 천문도는 중국 쑤저우에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사진=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제공]

천상열차분야지도. [사진=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제공]

세종대왕의 시대를 한국 전통과학기술의 황금기라 하셨다.
“세종은 뛰어난 유교적 군주였다. 당시에 어느 시대보다 중요한 업적들이 많이 나왔다. 한국 전통과학의 좋은 출발점이 되는 때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천문학과 측우기ㆍ한글 등 오늘날 과학이라 부를 수 있는 많은 업적들이 나왔다.”
 -한국의 전통과학 업적 중에 인상적인 세 가지만 꼽는다면.
“어려운 질문이다.(한참을 생각에 빠졌다.) 첫째로 꼽으라면 단연 신라시대 첨성대를 들겠다. (신라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시설이다.) 다음으로 조선 세종때 측우기도 뛰어난 작품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세종의 백성의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 것이다. 하드웨어보다는 그것이 담고 있는 용도 즉, 소프트웨어를 더 평가하고 싶다. 중국에도 이런 것은 없었다. 혼천시계(국보 230호)는 한국 장인들의 정교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혼천시계는 국보 230호로, 조선 현종 10년(1669)에 천문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송이영이 만든 천문 시계다. 서양식 자명종의 원리와 동양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혼천의(渾天儀: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관측기)를 결합해 만든 것으로 천체의 운행과 시간을 알려준다.)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 전시된 세종대왕 어진(운보문화재단소장).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 전시된 세종대왕 어진(운보문화재단소장).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세종시대에 꽃피운 과학이 왜 후대에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보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쓴 니덤도 같은 의문을 가졌다. 니덤이 연구 초기에 이런 의문을 가졌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후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과거의 과학이 현대 과학으로 이어지고 발전해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세종 이후에 과학발전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세종 때 프로젝트가 훌륭하게 완성됐으니 당시 상황에서 더 이상의 발전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얘기하겠다. 한 시대의 과학기술에 대한 평가는 당시에 왜 그런 과학기술이 나왔는지 시대적 배경을 해석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임종태 서울대 교수는 이에 대해“니덤은 자신의 이 같은 의문에 대해, 서양사회는 상인계층이 성장하면서 자본이 축적되고 이런 것이 근대과학 성장의 토대가 될 수 있었지만, 중국은 봉건관료제가 초기에는 과학발전에 기여했지만. 한편으론 상인계층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었으며, 이 때문에 전통과학이 근대로 이어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에 이른 것은 아니며, 가설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해 전망하자면.
“한국 학생들은 과학을 정말로 잘한다. 하지만 과학공부에 대한 열의는 이보다 훨씬 낮은 듯하다. 왜 그럴까. 한국 학생들이 과학을 배우는 방식은 ‘과학은 정말 흥미로우며 공부하고 싶고, 평생동안 하고 싶어할 수 있는 과목’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 같지 않다. 한국이 성공적인 연구개발에 기반해 미래 성장을 계획한다면, 이런 점은 매우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
어떻게 해야 하나.
“학생들이 시험에 연연하지 않도록 프로젝트 기반의 학습을 하게 해야 한다. 과학관ㆍ박물관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과학을 자유롭고 새로운 방식으로 탐구하는 장소, 교사들에게는 다양한 교수 학습법을 체험하고 실험하는 장소로 박물관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컬른 교수는 이날 ‘한국 과학기술의 황금기인 세종대왕의 세계’라는 주제로 세계 순회 전시회를 열 것을 제안했다. 그는“세계인들이 한국의 뛰어난 전통과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며“외국의 과학ㆍ박물관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의 과학과 문명에 대해 알릴 수 있는 과학 박물관 순회를 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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