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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교육열 이용한 지능 범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이번 치안본부 특수대에 적발된 대학부정 입학사건은 달아난 주범 황인씨(41·교재 납품업)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녀를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일부 부유층 학부모들의 삐뚤어진 교육열을 이용해 저지른 범죄라는 점에서 병든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으로 지목된다.
특히 대학교 직원과 현직고교 교사까지 사기 등 전과17범인 황씨의 사기놀음에 끼어 들어 하수인 노룻을 했다는 점에서 교육계에 큰 충격을 던졌고, 내신성적 등 대학입시 관리의 허점이 노출돼 가뜩이나 만연된 불신풍조를 부추겨 일파만파의 파문이 우려되고 있다.
경찰이 이번 사건을 적발해 내게 된 것은 사실상 우연. 시중은행의 자기앞수표·약속어음 등을 대량으로 위조해 전국에 유통시킨 장기완씨(68·구속중) 부자 등 유가증권 전문 위조단을 수사하다 뜻밖의 단서를 잡았다.
달아난 공범 황씨가 문영하는 서울 종로3가 화영빌딤 903호「한국 교재 기구 판매사」사무실에서 위조된 약속어음 등과 함께 한양대와 목포 전문대 등에 제출한 학생2명의 입학원서, 전국 15개 고교학교장의 직인, 사진 필름 원판 10여장, 학생증 원지 30여장 등 물증을 찾아낸 것이다.
이에 따라 장씨 등으로부터 『지난해 1월부터 황씨의 부탁을 받고 서울의 용문·우신·상문·진주·전주고 등 전국 15개 고교의 내신 성적표 25장과 학생증 등을 장당 10만원씩 받고 위조해 주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경찰은 또 24일 황씨 사무실에서「길 교수로부터 전화」라는 메모를 발견, 한양대 전 직원 중에서 이번에 구속된 이 대학 전산실계장 길만섭씨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연행, 추궁한 끝에 범행사실을 자백 받았다.
이번 사건의 특징은 부정 입학자 부모들과 범인들이 ▲아는 사람을 통해 직·간접으로 연결되었고 ▲대상이 부유층의 자녀들이며 ▲대부분 재수생들로 다시 대학임시에 떨어지면 군에 징집될 우려 때문에 본인이나 학부모들이 절박한 입장이었다는 점 등이다.
적발된 경희대 약대 부정 입학자 임모군(21)의 경우 약국을 경영하다 3년 전 사망한 임군의 아버지가 모집책 길씨와 잘 알던 사이로 어머니 김숙자씨(44)가 지난달 4일 길씨를 통해 8천5백만원을 건네주고 부정 입학할 수 있었고 역시 같은 대학 경영학과에 부정 입학한 조모군(21)도 K고교 국어교사인 김만석씨(40)의 조카와 친구사이로 교사 김씨가 평소 잘 아는 조군의 아버지에게 이같은 부정입학을 권유, 주선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교사 김씨는 모집책 길씨의 학교 동료직원이자 자신의 중학 동창인 한양대 의대 생화학 교실 실험기사인 송병섭씨로부터 길씨가 부정 입학을 주선한다는 말을 듣고 조군의 아버지로부터 지난해 11월10일 7천만원을 받아 이중 1천5백만원은 자신이 가로채고 5천5백만원 만 길씨에게 건네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먼저 구속된 유가증권 위조범 장씨 등이 주범 황씨의 부탁을 받고 사진 제판 담당 전문가 신진철씨(25·구속) 와 짜고 신씨가 일하고 있는 서울 낙원동159 D빌딩에 있는 복사 전문업체 H실업의 조감도 촬영기(리프로 마스터)를 이용, 상위권 학생의 내신 성적표에서 이름만 떼어낸 다음 다시 찍는 수법으로 내신 성적표 등을 위조했다.
황씨 등은 이같은 방법으로 명문대 1, 2학년 재학생들에게 3백만원에서 5백만씩을 주고 대리 응시케 했는데 수험시 학생증과 수험표를 대조하는 점을 이용, 대리 응시자의 사진을 붙여 본인처럼 속이고 부정 입학한 뒤 학교 교직원에게 1인당 5백만원 이상 돈을 주고 진짜 사진을 붙이는 수법을 써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주범 황씨가 5년 전부터 사무실에, 책상 1개와 전화1대, 여 사무원 1명만으로 유령업체를 만들어 운영해왔고 전국의 15개 고교 교장 직인 등을 위조해 가지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부정 입학자의 규모가 지금까지 밝혀진 것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고 황씨의 검거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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