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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레온·문어처럼 순식간에 색 바꾸는 소재 개발...전자종이로 진화할까

중앙일보

입력

“카멜레온이나 문어는 순식간에 몸 색깔을 변화시킨다. 몸속 색소를 이용한 것이 아니다. 피부 속 ‘광 결정(Photonic Crystal)’ 간 간격을 조절한 것이다. 이 원리를 응용하면 액정표시장치(LCD)와 같은 발광형 디스플레이보다 에너지 손실이 적으면서도 자연스러운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등을 만들 수 있다.” 

카멜레온은 색소가 아닌 피부에 있는 '광결정' 간 거리를 조절함으로써 색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킨다. 사진은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촬영된 카멜레온. [중앙포토]

카멜레온은 색소가 아닌 피부에 있는 '광결정' 간 거리를 조절함으로써 색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킨다. 사진은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촬영된 카멜레온. [중앙포토]

카멜레온·문어처럼 광 결정의 간격을 조절해 스스로 색이 변하는 소재가 개발됐다. 근육처럼 탄성과 유연성을 갖고 있어 디스플레이로 제작할 경우 종이처럼 둘둘 말아서 보관하는 전자종이(e-paper) 개발 등 응용 가능성이 크다. 한국연구재단은 14일 서강대 박정열 교수 연구팀이 이 같은 유연 소재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자연의 색 변화를 기술개발에 응용...근육처럼 유연한 '소프트 액추에이터' 세계최초 개발

광 결정이란 나노미터, 즉 10억분의 1m 크기의 빛을 내는 구조다. 햇빛 중에서 특수한 빛만 반사해 색소 없이도 빛을 내는 물질이다. 카멜레온뿐만 아니라 나비의 날개도 층층이 쌓인 광결정 구조가 있어 여러 색과 기하학적 무늬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를 진행한 박정열 서강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광결정은 간격이 넓어지면 적색 계열로, 간격이 좁아지면 청색 계열로 색이 바뀌는데 이는 빛의 굴절과 반사가 달라지기 때문”이라며 “무지개와도 원리가 비슷하다”고 말했다. 최근 광결정이 빚어내는 자연의 색 변화 현상을 기술 개발에 응용하려는 시도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지난 8월 13일 독일 뤼셀스하임에서 촬영된 무지개 사진. 광결정의 간격이 조절되면, 무지개처럼 빛의 굴절과 반사율이 달라져 색 조절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지난 8월 13일 독일 뤼셀스하임에서 촬영된 무지개 사진. 광결정의 간격이 조절되면, 무지개처럼 빛의 굴절과 반사율이 달라져 색 조절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

그러나 그간 광결정 구조의 간격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액정ㆍ용액 등 액체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체 형태이면서도 잘 휘어지는 상태로 구현하기 어려웠고 외부의 충격이나 환경 변화에 취약한 약점도 있었다.

이에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생체 근육처럼 탄성과 유연성을 가진 ‘소프트 액추에이터’를 개발해 이 같은 과제를 해결했다. 또 소프트 액추에이터가 전기 자극에 따라 광 결정 간 간격을 나노미터 크기로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전기 활성 고분자(EAP)’의 성격을 갖도록 개발했다. 잘 휘어지면서도 전기로 색의 변화를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번 색깔이 바뀌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히스테리시스' 현상도 적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즉 전자종이(e-paper)를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플라스틱 로직 사가 지난 2013년 1월 개발한 플라스틱 플레서블 디스플레이다. 이번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유전탄성체 기반 소프트 액추에이터 역시 전자종이로 응용될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연합뉴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즉 전자종이(e-paper)를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플라스틱 로직 사가 지난 2013년 1월 개발한 플라스틱 플레서블 디스플레이다. 이번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유전탄성체 기반 소프트 액추에이터 역시 전자종이로 응용될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연합뉴스]

박정열 교수는 “3차원 고체필름 형태로 제작한 만큼 전자종이뿐만 아니라 색을 바꿀 수 있는 자동차나 옷, 군사용 위장막 등에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발광형 디스플레이와 달리 눈부심 없이 화면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 별도로 빛을 내는 장치가 없는 만큼 가격 면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 과제는 남았다. 현재 소프트 액추에이터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최대 6kV의 다소 높은 전압과 함께 미리 일정한 힘으로 잡아당겨 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연구팀은 향후 소재 개선 연구를 통해 낮은 전압에서 사전에 힘을 가하지 않고서도 작동 가능한 액추에이터를 내놓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성과는 지난달 21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옵티컬 머티리얼스'(Advanced Optical Materials)’에 게재됐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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