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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서커스와 동춘서커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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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지영 문화팀 기자

이지영 문화팀 기자

캐나다 서커스단 ‘태양의서커스’ 열기가 뜨겁다. 지난 3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빅톱시어터에서 시작된 내한 공연 ‘쿠자’가 개막 전 선예매로만 100억원어치 티켓을 팔아치웠다. 연말까지 매출 2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공연장에서 만난 ‘쿠자’는 아찔한 공포 그 자체였다. 곡예사들은 7.6m 상공에 걸린 밧줄 위에서 자전거를 탔고,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는 730㎏의 거대한 바퀴 위에 올라 줄넘기를 했다. 2500여 석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아슬아슬한 장면이 펼쳐질 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긴장감을 즐겼다.

화려한 태양의서커스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문득 동춘서커스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 유일한 서커스단인 동춘서커스는 현재 경기도 안산 대부도 해변 천막극장에서 상설 공연을 하고 있다. ‘쿠자’ 공연을 본 지 꼭 닷새째 되던 날 동춘서커스 공연을 보러 갔다.

두 공연의 ‘원천 기술’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줄타기와 공중 묘기, 몸 비틀기와 의자 탑 위에서의 곡예 등이 공연의 큰 줄기를 이뤘다. 밧줄 위 자전거, 바퀴 위 줄넘기 등의 묘기도 똑같이 이어졌다. 동춘서커스 박세환 단장은 “곡예 종류와 기술은 원래 어느 서커스단이나 비슷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공연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600석 남짓인 동춘서커스 공연장의 객석은 절반도 채 차지 않았다. 아홉 개의 곡예 사이사이에 광대들의 코미디와 관객 참여 프로그램을 집어넣은 태양의서커스와 달리 동춘서커스는 18가지 곡예를 마치 학예회 장기자랑하듯 펼쳐놓기만 했다. 무대와 의상·조명·음악 등의 수준 차이는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였다. 똑같은 난이도의 곡예를 보여준다 해도 긴장감·박진감 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 서커스단의 매출 규모 역시 격차가 크다. 태양의서커스는 1984년 창단 이래 전 세계 450여 개 도시에서 1억9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연 매출은 8억5000만 달러(약 9600억원)에 달한다. 반면에 1925년 창단한 동춘서커스의 연 매출은 9억9000만원(2017년 기준)에 불과하다. 무려 1000배의 차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서커스는 1950년대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TV 보급이 결정타였다. 하지만 태양의서커스는 전통적인 곡예에 발레·연극·뮤지컬 등 현대 예술의 요소를 결합해 사양산업으로 전락한 서커스를 고급 공연 콘텐트로 부활시켰다. 태양의서커스 본거지인 퀘벡시의 재정 지원도 큰 몫을 했다.

세계 문화예술 비즈니스 사상 가장 성공한 모델로 꼽히는 태양의서커스를 보자니 여전히 향수와 추억에 기대 관객을 모으는 동춘서커스의 현실이 더욱 씁쓸했다. 21세기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고부가가치 문화 콘텐트로 육성할 방법을 이제라도 찾아봐야 할 때다.

이지영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