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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왜 BTS가 희생양이 돼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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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민경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방탄소년단(BTS)의 일본 활동에 적신호가 켜졌다. 9일 TV아사히의 ‘뮤직스테이션’을 시작으로 후지TV ‘FNS가요제’ NHK ‘홍백가합전’ 등 연말까지 예정 및 검토 중이었던 방송 출연이 줄줄이 취소됐다. 13일부터 도쿄·오사카·나고야·후쿠오카 등 38만석 규모로 일본 내 첫 돔 투어를 나서는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취소 이유는 “BTS가 반일 활동을 하고 있다”는 현지 극우 매체들의 보도 내용이다. 멤버 지민이 과거 착용했던 티셔츠 디자인과 RM이 광복절에 남긴 트윗 내용을 문제 삼았다. 원자폭탄 투하 장면이 프린트된 의상이나 “독립투사분들께 감사한다. 대한독립 만세”라는 발언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는 트집잡기에 불과하다. 지민이 해당 티셔츠를 입은 것은 1년 전 일이다. 따라서 지난달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일본 내 반한 감정을 의식한 조치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J팝이 하강 곡선을 그리는 반면 K팝은 승승장구하면서 BTS가 타깃이 됐다는 것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실제 일본 내 한류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2012년부터 반한 집회가 잇따르면서 직격탄을 맞았으나 3세대 아이돌을 필두로 재점화됐다. BTS는 지난해 해외 가수로는 유일하게 판매량 50만장을 넘기며 더블 플래티넘을 달성했고, 트와이스는 한국 가수로는 6년 만에 ‘홍백가합전’에 출연했다. 군 복무를 마친 동방신기 역시 올해 일본 가수들을 제치고 콘서트 동원력 1위(128만명)에 올랐다.

이번 방송 취소에 대한 일부 외신의 평가는 일본에 부정적이다. BTS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기사화되는 상황에서 “일본이 한국 가수들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빌보드) 등 비판적이다. 2012년 배우 김태희, 2014년 가수 이승철이 독도 문제로 각각 살해 협박을 받거나 입국을 거부당했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팬클럽 아미 역시 SNS에서 ‘#LiberationTshirtNotBombTshirt(원폭 아닌 광복 티셔츠)’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펼치고 있다. “미국 독립기념일을 축하해도 반영국이라 하지 않는데 왜 일본은 한국의 독립 축하를 반일이라고 하느냐”는 기사 댓글 등을 번역해 퍼 나르며 오해를 바로잡고 있다. BTS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사랑하자”는 메시지가 담긴 음악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이끌어냈다. 역사를 기억하고 계승하는 것이 왜 문제가 돼야 할까. 더는 문화가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