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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팀 “지도자 갑질” 호소문…'잔혹동화' 된 평창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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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코칭스태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전 여자 컬링대표팀. [연합뉴스]

코칭스태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전 여자 컬링대표팀. [연합뉴스]

지난 2월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은 시설과 경기운영 면에서 모두 완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문제가 없는 게 문제였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이 끝난 지 9개월 만에 ‘평창올림픽 신화’는 풍비박산이 났다.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준 여자 컬링과 여자아이스하키는 물론 쇼트트랙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팀 킴 “폭언 듣고 상금도 못 받아” #김 전 부회장 측은 반박, 진실 공방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 집단항명 #쇼트트랙은 파벌싸움 막장 드라마 #썰매 등 겨울종목 지원도 뚝 끊겨

‘영미 신드롬’을 일으켰던 여자 컬링 대표팀(팀 킴) 김은정(28)·김영미(27)·김선영(25)·김경애(24)·김초희(22)는 지난 6일 대한체육회에 호소문을 보내 지도자로부터 폭언과 함께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지도자는 김경두(62)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그의 딸인 김민정 감독, 사위인 장반석 감독이다.

이들은 김 전 부회장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 선수들을 이용하고 폭언을 하는가 하면 2015년부터는 국제대회에서 받은 상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전 부회장 측이 선수들의 사인이 들어간 공동명의의 통장 등을 공개하며 내부 갈등은 진실 공방으로 번졌다.

1990년대 한국에 컬링을 보급했던 김 전 부회장의 과도한 의욕이 이런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7월 결혼한 ‘안경 선배’ 김은정(스킵)의 거취와 역할을 두고 양측은 그동안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서로 등을 돌리면서 ‘팀 킴’이 아니라 ‘팀 킬’이 됐다.

선수들의 항명 사태로 최근 캐나다로 돌아간 새러 머리 전 여자아이스하키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선수들의 항명 사태로 최근 캐나다로 돌아간 새러 머리 전 여자아이스하키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평창올림픽 당시 남북 단일팀을 이뤄 국민에게 감동을 줬던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 역시 위기다. 더구나 선수들은 외국인 감독에 대한 항명 행동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수들이 집단으로 훈련을 보이콧하자 새러 머리(30) 감독은 실망감을 안고 캐나다로 돌아갔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명장인 앤디 머리의 딸인 머리 감독은 2014년 9월 여자대표팀을 맡았다. 평창올림픽 당시엔 단일팀을 이끌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하지만 라인을 자주 바꾸는 선수 기용 방식에 불만을 품은 선수들은 지난 4월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감독 교체 성명서’까지 만든 뒤 훈련을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지난달 머리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했고, 항명을 일으킨 선수들에게는 6개월 국가대표 자격정지의 징계를 내렸다.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 [뉴스1]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 [뉴스1]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땄던 쇼트트랙은 파벌 싸움과 갈등이 ‘막장 드라마’ 수준이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조재범 코치가 심석희를 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달에는 법정 구속된 조 코치가 쓴 옥중 편지가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조 코치는 이 편지에서 “윗선인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가 ‘승부조작을 해서라도 한체대 출신 심석희를 1등 시키라’고 압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지만, 국정감사에서 녹취록이 공개됐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은 “사람이 모이면 돈이 모이고 권력 다툼과 편 가르기가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인기 종목은 비교적 행정이 투명하고 힘의 균형이 이뤄진다. 하지만 4년에 한 번 인기가 반짝하는 겨울 스포츠는 관심과 감시의 영역 바깥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권력의 사유화, 지역별 이합집산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봅슬레이 스켈레톤 국가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윤성빈 선수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봅슬레이 스켈레톤 국가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윤성빈 선수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창올림픽 신화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면서 각 겨울 종목에 대한 지원도 뚝 끊겼다.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을 딴 윤성빈(24)과 은을 따낸 남자 4인승 봅슬레이팀은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 평창슬라이딩센터를 단 한 번도 이용하지 못했다.

공사비 1141억원이 들어간 슬라이딩센터는 정부와 강원도가 사후 활용방안을 마련하지 못해 폐쇄된 상태다. 약 14억원인 1년 운영비를 누가 감당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2014년부터 대표팀 봅슬레이를 제작했던 현대자동차도 썰매 제작을 중단했다.

2012년부터 대한컬링경기연맹에 약 100억원을 지원했던 신세계는 올해를 끝으로 후원을 끝내기로 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올림픽 이후 겨울 종목에 대한 후원을 줄이거나 끊는 분위기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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