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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온 마음 다해 너를 기억할게” 큰 족적 남기고 떠난 윤창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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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 국군병원에서 열린 윤창호씨 영결식에서 고인의 군 동료와 친구들이 운구하고 있다. 22살 청년인 윤씨는 군 복무 중인 지난 9월 만취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졌고 음주 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윤창호법' 제정 추진을 촉발시켰다. 송봉근 기자

11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 국군병원에서 열린 윤창호씨 영결식에서 고인의 군 동료와 친구들이 운구하고 있다. 22살 청년인 윤씨는 군 복무 중인 지난 9월 만취 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졌고 음주 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윤창호법' 제정 추진을 촉발시켰다. 송봉근 기자

“창호야, 넌 우리 미래의 일부분이었어. 너는 명확한 꿈을 위해 분명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친구였어. 정의가 뭔지 법이 뭔지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뭔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넌 늘 얘기했지. 친구지만 많이 배웠고 우릴 성숙하게 만들었어. 친구여서 고마워. 온 마음 다해 너를 기억할게. 안녕, 창호야. 사랑한다.”

11일 오전 국군부산병원에서 영결식 #가족·친구·동료·국회의원 등 마지막 배웅 #윤씨 아버지 “더는 안타까운 죽음 없어야” #동료 “꿈을 위해 움직일 줄 아는 친구였다” #하태경 의원 “‘윤창호법’ 다음주 상정” #11일 오후 가해자 박씨 구속영장 발부

지난 9일 숨진 고(故) 윤창호씨의 친구 김민진(22)씨가 울먹이며 추도사를 읽자 윤씨의 아버지 윤기현(54)씨가 고개를 떨구며 오열했다. 윤씨는 지난 9월 25일 부산 해운대구 미포오거리 횡단보도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뇌사상태에 빠졌다 46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11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 국군병원에서 열린 윤창호씨 영결식에서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1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 국군병원에서 열린 윤창호씨 영결식에서 유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1일 오전 8시 30분 윤씨의 영결식이 열린 부산 해운대구 국군부산병원 강당은 비통함으로 가득했다. 윤씨의 가족과 친구, 윤씨가 복무한 주한 미군 부대 동료, 손학규 대표와 하태경 의원(이하 바른미래당),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 등 200여 명의 조문객이 윤씨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영결식에 앞서 중앙일보와 만난 아버지 윤씨는 “우리 창호의 죽음으로 인해 더는 안타까운 죽음이 없어야 하며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으면 한다”며 “‘윤창호법(도로교통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된다 해도 창호는 돌아올 수 없지만 이후 음주운전 사상자 수가 줄어든다면 그보다 더 의로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439명 역시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모두 가슴 아픈 사연이 있을 것”이라며 “힘들지만, 창호의 죽음을 공론화해 비극을 끊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어렵게 말을 이었다.

11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 국군병원에서 윤창호씨 영결식이 열렸다. 송봉근 기자

11일 부산 해운대구 부산 국군병원에서 윤창호씨 영결식이 열렸다. 송봉근 기자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거수경례, 고인 약력 보고, 하종식(대령)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장의 조사 낭독, 군대 선임과 대학 친구의 추도사 낭독, 종교의식, 헌화, 묵념 순으로 이뤄졌다. 윤씨와 같은 부대에서 생활한 김동휘 미2사단 상병은 추도문에서 “창호는 실없는 농담에도 크게 웃어주는 웃음이 많은 친구였고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늘 ‘짧은 인생, 조국을 위해’라는 문구가 적힌 수첩을 지니고 다녔다”며 “창호의 죽음이 대한민국의 적나라한 치부를 드러냈다. 더 이상의 부도덕한 희생을 막아 창호의 이름이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하게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헌화가 시작되자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던 윤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사진을 어루만지며 북받치는 듯 연신 눈물을 흘렸다. 이날 영결식에는 함께 횡단보도에 있다가 음주 차량에 치인 윤씨의 친구가 휠체어를 타고 참석해 헌화했다. 윤씨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관이 운구차에 실린 뒤에도 차에 엎드린 체 오래도록 일어나지 못해 보는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11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 국군병원에서 열린 윤창호씨 영결식에서 고인의 가족, 군 동료와 친구들이 고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1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 국군병원에서 열린 윤창호씨 영결식에서 고인의 가족, 군 동료와 친구들이 고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아침 일찍 영결식장을 찾은 하태경 의원은 “음주 사고가 고의가 아닌 과실로 인정되는지 인식 못 했는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창호의 친구들이 알려줬다”며 “창호가 우리 사회에 큰 족적을 남기고 떠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 의원이 국회의원 104명의 동의를 받아 지난달 22일 대표 발의한 이른바 ‘윤창호법’은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 의원은 “다음 주 국회 본회의에 상정, 법 통과만 남았다”고 밝혔다.

11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 국군병원에서 열린 윤창호씨 영결식에서 고인의 가족, 군 동료와 친구들이 고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1일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부산 국군병원에서 열린 윤창호씨 영결식에서 고인의 가족, 군 동료와 친구들이 고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고려대 행정학과에 재학 중이었던 윤씨는 지난해 5월 입대해 미2사단 210포병여단 1-38포병대대 카투사에서 상병으로 복무하던 중 휴가 기간 사고를 당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가해자 박모(26)씨를 음주운전과 위험운전치사 혐의로 10일 체포해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은 11일 오후 박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결과 사안이 중요하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부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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