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박영재의 은퇴와 Jobs(32)
김영숙(48) 씨는 작은아들이 대학 수시에 합격했다. 큰딸은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3년 연상인 남편은 대기업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남편과는 25년 전 거래처 직원으로 처음 만났고, 2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후에도 한동안 직장생활을 계속했지만 둘째를 임신하면서 일을 그만두었고, 그 후로 아이들 양육에만 전념했다.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삶의 여유가 없었다. 첫째 대학 진학 후 바로 둘째가 고 2가 되면서 긴장의 날이 계속됐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을 깨워 아침 챙겨 먹이고, 낮에는 집안일 하고 또 밤에는 아이들을 영어학원에서 수학학원으로 자동차로 이동시키는 셔틀기사 노릇을 수년간 했다. 다행스럽게 둘째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게 돼 한시름 놓았다. 갑자기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불안했다. ‘난 온종일 집에서 뭘 하는 거지’,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하는 거지’,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노후 준비는 제대로 되어 있는 건가’ 라며 스스로에 대해, 앞으로 미래에 대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재취업을 생각해 봤다. 하지만 20여 년 전 무역회사에서 사무와 관리업무만 7~8년 했던 김 씨에게 너무도 먼 이야기였다. 더구나 요즘은 청년들도 취업하는 것이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힘들다고 하는데…. 그래도 우두커니 집에만 있는 것이 싫어 아르바이트라도 찾아보니 만만치 않았다. 몇 군데 편의점을 알아봤지만 젊은 학생을 선호했다. 시간제 베이비시터도 소개받았다.
그러나 이제까지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했는데, 또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싫었다. 공기업 콜센터에서 아르바이트했지만 30대 후반인 여성 센터장과 대부분이 20~30대 여성인 센터 직원들과 함께 일하기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일주일에 2~3일 정도 부정기적으로 일을 줘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식당 주방일도 마뜩잖았다.
‘앞으로 살아갈 날은 긴데….’ 그러려면 어딘가 소속돼 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알게 된 게 자격증이었다. 노인 심리상담사, 뷰티 코디네이터, 반려동물관리사, 필라테스전문지도사, 정리정돈전문가, 공인중개사 등등 정말 생각보다 많은 자격증 종류가 있었다.
김 씨는 정말 대한민국에 이렇게 많은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자격증만 취득하면 쉽게 취업할 것 같았고, 또 자격증을 가지고 창업을 하면 모두 대박 날 듯한 느낌이 들었다. 김 씨의 지인이 작년에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개업했는데, 집값이 폭등하면서 짭짤한 재미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눈에 확 들어왔다. 과연 김 씨에게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어울릴까.
과거에는 특정한 자격증만 가지고 있으면 경제적인 수입과 명성을 가질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변호사다. 하지만 요즘은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다 보니 경쟁도 치열해지고, 일부는 사무실 임차료도 부담하기 힘들 만큼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전문 분야의 일을 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자격증이다. 이를테면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려면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꼭 필요하다. 공인중개사는 과거엔 시험도 쉬웠기 때문에 쉽게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시험이 어려워졌다.
지난 10월 27일 시행된 공인중개사시험 응시자는 약 22만명에 달했다. 예전엔 중장년층 주로 응시했으나 지금은 20대 30대 청년응시자만 8만1727명으로 40% 가까이 됐다. 하지만 시험 난도는 점점 높아져서 최근 몇 년 동안 합격률이 25~30% 정도에 머물고 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공인중개사 자격증 보유자와 개업 공인중개사는 각각 40만6072명, 10만명이 넘는다. 2014년 서울시와 서울 신용보증재단이 함께 작성·발표한 ‘43개 생활밀접 형 자영업의 업종 및 지역밀집도 분석’ 보고서는 창업 후 3년간 생존 도가 높은 업종을 순서대로 정리했는데, 부동산중개업은 45.9%로 밑에서 5번째였다.
많은 중장년이 괜찮은 자격증을 소개해달라고 하지만 괜찮은 자격증이란 없다. 그냥 자격증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할 뿐이다. 공인중개사의 경우처럼 과연 힘들게 자격증을 딸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론도 일고 있다.
요즘 드론과 관련된 자격증이 주목을 받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학원비가 300만~500만원 소요된다. 자격을 취득해도 실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게 12kg의 드론을 장만해야 한다. 그러나 기계 가격만 2000만원이 넘는 데다 10여개의 보조배터리와 충전기, 드론과 장비를 운반할 차량 등을 마련해야 한다. 또 매년 400만원가량의 보험료도 지불해야 한다.
만약 드론을 이용해 방제사업을 구상한다든가 농사일을 잘 아는 전문가라면 드론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자격증 취득은 본인의 적성에 맞는가, 과거에 본인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가, 앞으로 수요가 있을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위 사례자 김 씨가 과거에 경리업무를 했다면, 전산회계 자격증을 취득하면 관련된 분야로의 취업이 수월할 것이다.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tzang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