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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아시아 굴기(倔起) 선언, 한국은 잡아먹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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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넷플릭스를 세계적 OTT 업체로 만드는 데 기여한 오리지널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사진은 House Of Cards Season 6 스틸샷.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를 세계적 OTT 업체로 만드는 데 기여한 오리지널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사진은 House Of Cards Season 6 스틸샷. [사진 넷플릭스]

지난 8일과 9일 싱가포르에서 양일간 진행된 넷플릭스 신작 라인업 행사 'See What's Next:Asia'는 행사 규모 자체만으로 넷플릭스의 위상을 증명했다. 선보일 콘텐츠를 공개한다며 대륙 단위로 기자들을 한자리에 한 데 모을 수 있는 콘텐츠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란 간단한 질문을 해보면 쉽다. 이번 행사에 넷플릭스의 초청으로 모인 매체들만 아시아 11개국 200여개 매체다.

아시아 지역은 넷플릭스의 다음 목표다. 이번 행사는 넷플릭스가 본격적으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넷플릭스가 아시아 시장에 진출한 건 2016년 초.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아시아 국가에 넷플릭스를 런칭했다. 아직 성과를 논하기에 지난 3년이 짧은 기간인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현재 성적은 좋지 않다. 글로벌미디어조사업체 디지털TV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유료 VOD 시장에서 넷플릭스는 전 세계 시장의 36%, 미국·유럽에서는 각각 48%, 45%를 차지한다. 이에 반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점유율은 9%에 불과하다.

아시아에선 미미한 넷플릭스, 아시아 점령할까

미국 아마존의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는 연회비 99달러(약 10만5000원)를 내면 영상·음악 스트리밍·전자책 구독을 포함해 아마존닷컴 쇼핑몰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중앙포토]

미국 아마존의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는 연회비 99달러(약 10만5000원)를 내면 영상·음악 스트리밍·전자책 구독을 포함해 아마존닷컴 쇼핑몰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중앙포토]

아시아를 점령하기 위해 넷플릭스가 선택한 전략은 정공법(正攻法)이다. 콘텐츠 기업에 정공법이란 좋은 콘텐츠를 많이 확보하는 거다. 이번 행사에서 공개한 17개 작품을 포함해 최근 넷플릭스는 내년까지 한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8개국과 진행할 100여편의 오리지널 작품을 공개했다. 콘텐츠 투자금액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올해만 해도 애초 80억달러(약 9조1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최근 여기에 20억달러(약2조2000억원)를 채권 형식으로 마련해 추가 투입했다.

물론 공격적 투자로 넷플릭스의 부채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현재 부채 약 100억달러(약11조3000억원)), 넷플릭스는 개의치 않는 눈치다. 9일 오전 싱가포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계속 투자하며 성장하는 것이 매출에서 얻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얻고 있다”며 “투자를 통해 소비자가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늘리고 창의적인 인재 양성을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장기적으로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훌루 등 실질적 위협에 공격적 투자

월트 디즈니가 소유하고 있는 IP '어벤져스' [중앙포토]

월트 디즈니가 소유하고 있는 IP '어벤져스' [중앙포토]

넷플릭스가 무리하면서 이렇게 공격적 투자를 해나가는 데는 실질적 위협이 존재하는 탓이기도 하다. 지난해 북미 OTT 시장에서 가입자 수를 놓고 봤을 때 1등은 44%를 차지고 있는 넷플릭스지만, 아마존 프라임(23%)과 훌루(13%)가 호시탐탐 1등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OTT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런칭한 아마존 프라임의 경우도 가입자 수가 1억명이 넘었다.

‘훌루’는 향후 행보가 특히 주목되는 OTT다. 최근 마블, 픽사, 루카스필름, ESPN 등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덩치를 불려왔던 ‘월트 디즈니’ 때문이다. 월트 디즈니는 지난 6월 홈페이지를 통해 21세기 폭스의 영화·TV 사업 부문을 713억달러(약80조원)에 인수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는 디즈니의 ‘미키마우스’ ‘도널드 덕’ 등 만화 캐릭터에 마블 인수로 확보한 아이언맨·스파이더맨·엑스맨 등 ‘핫’한 지적 재산권(IP), 또 여기에 폭스 인수로 심슨·아바타·데드풀·판타스틱4 등 경쟁력 있는 IP를 두루 보유하게 됐다.

콘텐츠 외적으로도 월트 디즈니의 공격적 행보는 ‘넷플릭스’에 실질적 위협이다. 월트 디즈니는 21세기 폭스 인수를 통해 기존 확보하고 있던 훌루 30% 지분을 60%까지 늘렸다. 이를 바탕으로 월트 디즈니는 스포츠 콘텐츠 중심의 ‘ESPN플러스 OTT’와 그 자체로 경쟁력 있는 ‘훌루’와 함께 내년 새롭게 런칭할 OTT를 중심으로 OTT 사업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내년에 새롭게 런칭할 디즈니의 OTT는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디즈니플릭스’라 불리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지난 9월 월트 디즈니 CEO 밥 아이거는 콘퍼런스콜에서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공적 도입이 내년의 최우선 과제”라며 전방위적 지원을 선언했다. 본격적 경쟁이 시작되는 내년부터 월트 디즈니가 보유한 막강한 IP는 넷플릭스에 볼 수 없게 될 예정이다.

"한국, 아시아 점령 위한 전략적 요충지"

넷플릭스 국내 첫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국내 첫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사진 넷플릭스]

다시 아시아 시장으로 돌아오면, 아직까지 글로벌 OTT의 상대적 영향력이 낮은 아시아 시장은, 확보하기만 하면 넷플릭스의 성장세에 날개를 달아줄 ‘빅 마켓’이다. 아시아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는 바로 한국이다. 9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넷플릭스의 최고콘텐츠책임자(COO) 테드 사란도스는 “넷플릭스가 ‘글로벌 오리지널 영화’로 첫 투자한 작품이 봉준호 감독의 옥자였는데 이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이 한국 시장에 대한 인사이트를 줬다”며 “아시아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 영화와 TV 콘텐츠를 좋아한다. 아시아 전략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한국에 큰 투자를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넷플릭스는 지난해 공개한 ‘옥자’를 비롯해 올해 ‘범인은 바로 너!’ ‘YG전자’ 등 한국산 오리지널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이번 싱가포르에서 열린 라인업 행사에서도 예능 ‘범인은 바로 너! 시즌2’,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의 드라마 ‘킹덤’,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천계영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인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 등 내년 공개할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공개했다.

국내 OTT업체, 넷플릭스에 비하면 '구멍가게'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굴기’와 비교하면 왓챠플레이, 티빙(CJ ENM), 푹(지상파), 옥수수(SK브로드밴드), 올레TV모바일(KT) 등 한국의 OTT 업체의 경쟁력은 슬프지만 그야말로 ‘구멍가게’다. 가격 경쟁력으로 빠르게 점유율을 높인 미국 시장과 달리(참고로 미국 케이블 방송 요금은 약 30~50달러 수준인데 반해 넷플릭스 기본 요금은 7.99달러다), 한국은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케이블TV가 존재해 넷플릭스의 한국 내 가입자 수는 30만명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를 계속해 늘려가면서 공격적 마케팅을 확대한다면 시간은 걸릴지언정 경쟁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지난 5월 넷플릭스는 LG유플러스와 마케팅 제휴를 맺었고 이르면 이번 달부터 LG유플러스의 IPTV를 통해 넷플릭스 콘텐츠를 볼 수 있을 예정이다. 이를 통해 LG유플러스가 전략적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통신사도 넷플릭스와의 제휴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

독점적 해외 배분권을 조건으로 300억원대에 넷플릭스에 공급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사진=tvN]

독점적 해외 배분권을 조건으로 300억원대에 넷플릭스에 공급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사진=tvN]

OTT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콘텐츠 기업들은 넷플릭스와 ‘불가근불가원’(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관계다. CJ ENM(티빙)은 tvN의 예능, 드라마 등 화제작을 넷플릭스에 공급하면서도 일부 킬러 콘텐츠를 공급하지 않거나 공급 시기를 늦추고 있다. 예를 들어 400억원대 제작비가 들어간 tvN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독점적 해외 배급권을 조건으로 넷플릭스에 300억원대로 공급하면서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회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니어층이 확보된 예능 ‘신서유기’의 시즌 6는 아직 넷플릭스에서는 볼 수 없다. 지상파(푹)는 현재까지 넷플릭스에 콘텐츠 공급을 하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 OTT도 합종연횡+콘텐츠 확보…마냥 손 놓고 있지 않아

국내 OTT 업체들이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역시 넷플릭스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규모가 미미하긴 하지만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늘리고 있다. ‘옥수수’는 지난 2016년부터 매년 50여편씩, 대략 120여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왔다. 푹 또한 지난 1일 첫 오리지널 드라마인 ‘넘버식스’의 제작을 발표했고, 올레TV모바일도 지난달 웹드라마 ‘짝사랑 전세역전’, 예능 ‘아미고 TV 시즌4’ 등을 공개했다.

2016년 SK브로드밴드의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 '옥수수(oksusu)' 론칭 행사. 윤석암 SK브로드밴드 미디어사업부문장이 옥수수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6년 SK브로드밴드의 모바일 동영상 플랫폼 '옥수수(oksusu)' 론칭 행사. 윤석암 SK브로드밴드 미디어사업부문장이 옥수수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근 국내 OTT 업계에서는 ‘합종연횡’에 대한 이야기도 숱하게 오간다. 대표적인 게 옥수수(SK브로드밴드)가 ‘푹’의 일부 지분을 인수하거나 전체를 인수해 덩치를 키울 것이란 소문이다. 현재까지 SK브로드밴드는 부인하고 있지만 충분히 가능성은 있는 시나리오다. SK브로드밴드는 최근 ‘옥수수’ 사업부의 분할을 검토하고 있는데, 덩치 큰 기업이 특정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부 자금을 확보하고 힘을 싣기 위해 취하는 통상적인 행보가 특정 사업 단위로 법인을 분할하는 방식이다.

앞서 지상파들의 이익단체인 방송협회는 넷플릭스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LG유플러스에 대해 “국내 콘텐츠 사업자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으로 수수료를 받으려고 한다”며 “애써 구축된 국내 통신 인프라를 헐값에 내줘 국내 콘텐츠 유통질서를 교란하고 미디어 산업의 생태계를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견 합당한 주장이지만 당시 여론은 좋지 않았다. 국내 미디어 업계의 ‘자구 노력’을 바탕으로 자체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압도적이었다. 이전처럼 ‘국내 미디어 산업 보호’만을 외쳐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시장 진입을 막는다면 국내 이용자들의 콘텐츠 선택권을 제한하고 건강한 콘텐츠 경쟁 자체를 막아 콘텐츠 산업 경쟁력 자체를 떨어뜨릴 것이란 우려도 잇따랐다.

"자국 미디어 생태계 보호" 목소리에 반발 여론 많아

무조건적 규제보다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람직한 경쟁을 유도해 소비자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적지 않은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OTT는 공적 자원을 바탕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 방송처럼 사회적 영향력 논리로 규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국내 OTT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대응책이 될 수 있다. 국내 미디어 사업자는 전략적 차별화, 규모 있는 콘텐츠 투자, 과감한 합종연횡으로 대응해야 한다.”(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건강한 콘텐츠 경쟁을 유도하며 긍정적 효과를 줄 수도 있지만 대규모 자본 공습으로 국내 시장의 종속화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동등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정부는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 지난 9월 열린 한국언론학회 세미나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국내 진출에 따른 미디어 시장 환경 변화'의 진단으로 글을 끝 맺는다.

싱가포르=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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