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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범람이 웬말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마약이 무서운 기세로 번져가고 있다. 몇 해 전만해도 기지촌과 연예인·폭력세계에서나 상용되던 마약이 요즘은 도시는 물론 농어촌과 일반가정에까지 파고들며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부산을 중심으로 경남일원에는 무려 4만여명이 히로뽕에 오염됐다는 집계이고, 서울 강남 유흥가 부근에서는 청소원이 매일같이 1회용 주사기를 가마니로 수거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어린이들의 출입이 잦은 전자오락실이나 만화·비디오가게에까지 마약이 침투한지 오래고, 술집·사우나탕·여관 등에서는 마약을 마치 옛날 양담배 거래하듯 하며 예사로 주사하는 등 마약의 소굴이 되고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호기심과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층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는 직장인과 일부 유한가정주부, 심지어 여대생에 이르기까지 마약 투약이 성행하고 있다.
수사당국의 집계만 보더라도 78년에 적발된 마약사범이 78명이던 것이 87년 9백85명, 88년에 1천3백62명으로 급증했고 검찰이 추정하는 상습투약자는 13만명이나 되고 있다. 마약투약 경험자까지 합치면 1백만명을 웃돌 것이라는 추정이고 보면 이른바 「백색의 공포」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마약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파멸케 하는 악마의 약으로 불리고 있다. 예부터 아편장이라하면 패가망신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듯이 마약은 폐인과 패가로만 그치질 않고 사회파멸과 연결되는 공포의 약이다.
마약에 중독되면 정신분열과 환청·환시 등 심한 후유증과 무서운 금단증세를 나타내기도 하고 환각상태에서 각종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지난해 어느 호텔에서의 여자인질사건이나 경남 진양의 어느 주부가 아들을 마당에 내동댕이쳐 숨지게 했던 사건도 모두가 환각상태에서의 범행이었다. 며칠 전 경부선 열차 권총강도범의 호주머니에서 본드가 나온 것이나 그 밖의 대소사건혐의자 소변에서 히로뽕이 검출되는 것 역시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히로뽕 투약 때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주사하기 때문에 중독자들의 80%가 간염이나 성병에 감염되어 있으며 장차 AIDS 감염우려도 없지 않아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무서운 마약의 만연은 이제 정부뿐 아니라 전국민이 앞장서 퇴치에 나서지 않으면 안될 만큼 증대한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도 검찰의 마약전담수사요원은 얼마 전 59명을 증원했는데도 전국에 1백20명에 불과하고 마약중독자들을 감호 치료할 시설도 태부족한 실정이다. 부산교도소만해도 히로뽕 재소자가 8백명이 넘지만 격리병동은 20범상에 불과하다.
마약밀매조직은 제조책과 운반책·조직책 등 음성적 점조직으로 국내와 외국의 범죄조직과도 연계를 갖고 있다.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전국에 걸친 수사체제와 외국수사기관과의 정보교환 등 협력체제가 이루어져야하고 첨단화한 범죄수법에 대처해 수사기법을 고도로 전문화하고 첨단수사장비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수사차원보다 우리사회 전체 문제로 보고 마약근절과 퇴치에 국민 스스로가 감시하고 협조하는 일이다. 앵속의 재배원과 마약사범의 신고, 향락주의의 병리를 치유하는데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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