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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93년 만에 반환되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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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서울대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史庫本) 환수위원회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는 병인양요(1866년) 당시 프랑스군에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 등 해외 반출 문화재를 돌려받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본지 5월 31일자 1, 11면>

환수위원장인 이태수 서울대 대학원장은 "이번 환수는 소유권이 우리나라에 넘어온다는 점을 확실히 했기 때문에 '영구임대'나 '맞교환' 등 기존의 문화재 반환 관행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교계, 3월 환수위 출범=오대산 사고본이 도쿄대에 보관 중이란 사실은 오래전부터 국사학계에 알려져 있었으나 반환 문제는 좀처럼 공론화되지 못했다. 불교계는 3월 3일 조계종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과 서울 봉선사 주지 철안 스님을 공동 의장으로 하는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본격적인 환수 운동에 나섰다.

같은 달 15일 월정사 재무국장 법상 스님, 노회찬(민노당) 국회의원, 문만기 환수위 실행위원장 등 5명이 일본 도쿄대를 방문해 첫 협상을 했다. 한국 측은 도쿄대에 "조선왕조실록을 이른 시일 안에 되돌려 달라"며 정식으로 반환요청서를 전달했다. 4월 17일 열린 2차 협상에서 도쿄대는 "재산처분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환수에 난색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환수위는 "1932년 오대산본 27책을 경성제국대학(서울대 전신)에 돌려준 전례가 있다"고 반박했다. 환수위는 31일로 잡혔던 3차 협상에서 도쿄대가 반환을 거부하면 일본 법원에 반환 요구 소송을 낼 계획이었다.

?서지학 가치 커=도쿄대 고미야마 히로시(小宮山宏) 총장은 5월 16일 정운찬 서울대 총장에게 편지를 보내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을 서울대에 기증하겠다"고 밝혀 왔다. 고미야마 총장은 "도쿄대와 서울대 규장각이 보관 중인 조선왕조실록이 하나가 되는 것은 양 대학 간 학술 교류를 더욱 긴밀히 하는 데 최선의 방법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이에 한국은 '환수', 일본은 '기증'이라는 방식에 양측이 합의함으로써 소모적인 '자존심 논쟁'을 마무리 지었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오대산 사고본 가운데 성종실록과 중종실록은 최종 간행되기 이전 교정쇄 상태로 서지학(책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박성우 기자

◆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임진왜란 이후 새로 인쇄한 4종의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하나. 오대산 사고본은 태백산, 적상산, 강화도 사고본 등 다른 3종의 실록과 함께 보관돼 왔지만 일제 때인 1913년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초대 조선총독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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