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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파로호, 수은 오염 국내 최악···"상류엔 北폐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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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강원도 화천군 파라호에 낚싯대가 줄줄이 설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강원도 화천군 파라호에 낚싯대가 줄줄이 설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지난달 25일 북한강 상류인 강원도 화천군 파로호. 굽이진 물길을 따라 호수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끄리·누치·배스 수은 기준 초과 #잡힌 물고기 춘천 식당서 팔려 #평화의 댐 북쪽 농도 가장 높아 #남북, 유입경로 공동조사 필요성

김대산 한국수달연구센터 연구원의 안내로 모터보트를 타고 둘러본 호수에는 물가를 따라 낚시 좌대들이 줄지어 있었다. 배를 타고 호수를 오가는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인근에서는 어민들이 그물을 걷어 올리고 있었다. 양구군 지역에서는 군(郡)으로부터 허가받은 일부 주민이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화천군 지역에서도 어로 활동을 재개할 계획이다.

어민 김우곤 씨는 “파로호에서는 장어뿐 아니라 웬만한 민물고기는 다 잡힌다”며 “잡은 물고기는 파로호 인근 횟집은 물론 춘천에 있는 식당까지 팔린다”고 말했다.

파로호 퇴적물, 수은 오염 심각

파로호에서 한 어민이 그물을 걷어 올리고 있다. 천권필 기자

파로호에서 한 어민이 그물을 걷어 올리고 있다. 천권필 기자

하지만, 어종이 풍부하고 청정 지역으로 알려진 파로호가 국내의 호수·강 중에서 유해 중금속인 수은 오염이 가장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가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정미(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가 수은 통합측정망 시범사업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파로호 퇴적물의 총 수은 농도는 ㎏당 평균 278㎍(마이크로그램,1㎍=100만분의 1g)으로 조사됐고, 최대 451㎍까지 측정됐다.

하류 팔당호의 평균치(26㎍/㎏)보다 10배 이상 높았다. 국립환경과학원은 퇴적물의 수은 농도가 100㎍/㎏을 넘으면 호수 바닥에 사는 생물이 해를 입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독성이 강한 메틸수은 농도 역시 0.94㎍/㎏으로 팔당호(0.12), 충주호(0.27), 옥정호(0.57)와 큰 차이를 보였다.

유기수은의 일종인 메틸수은은 먹이사슬을 따라 올라가며 농축되는 성질이 있다. 1950년대 일본에서는 공장에서 배출된 수은이 퇴적토에서 미생물에 의해 메틸수은으로 바뀌고, 이것이 먹이사슬을 거쳐 인체에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면서 ‘미나마타병’이 발생했다.

끄리·배스 등 수은 기준치 초과

파로호에 낚시 좌대가 설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파로호에 낚시 좌대가 설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실제로 퇴적물 오염이 심하다 보니 파로호에 서식하는 물고기의 체내 수은 농도 역시 높았다. 끄리의 수은 농도는 419~570㎍/㎏으로 일부 개체는 어류의 수은관리 기준치인 500㎍/㎏도 초과했다. 쏘가리는 기준치를 넘지는 않았으나 166~325㎍/㎏으로 다른 어종보다 높았다.

주민들은 이 같은 오염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파로호에서 낚시터와 식당을 운영하는 김상덕(60) 씨는 “파로호가 수은에 오염됐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2016년 조사에서도 파로호의 일부 끄리·누치·배스 개체가 수은 기준치를 초과했다. 옥정호(섬진강댐)에서는 배스가, 충주호에서는 강준치와 배스, 팔당호에서는 강준치, 영산강에서는 블루길·누치 등 큰 육식 어종 가운데 일부가 기준을 초과했다. 파로호만의 문제가 아닌 셈이다.

동종인 서울시립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전국 곳곳이 수은에 오염된 것은 국내에서 배출된 수은 영향도 있겠지만, 석탄 사용이 많은 중국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 석탄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수은은 2015년 한 해 73t이었는데, 국내 발전소에서 배출하는 것은 연간 0.8t 수준이다.

전 세계 석탄사용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은 수은 배출량도 세계 1위다. 중국에서 배출한 수은은 한국과 일본은 물론 태평양 건너 미국까지도 날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 오염원 지속적으로 유입”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하지만 파로호의 오염이 유난히 심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지점별 수은 농도를 보면, 평화의 댐 북쪽이 가장 높았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평화의 댐 상류 지역에 잠재적 오염원이 있으며, 여기서 배출된 수은이 평화의 댐 수로를 거쳐 지속해서 파로호로 유입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사 용역을 맡은 이종현 EH R&C의 환경보건안전연구소장은 “상류에 있는 북한 폐광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오염 물질이 강을 따라 남쪽으로 흘러내려 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남북 공동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평화의 댐 상류.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평화의 댐 상류.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쏘가리 등 주 2회 이상 섭취 유의”

담수 어패류 섭취 가이드라인. [환경부 제공]

담수 어패류 섭취 가이드라인. [환경부 제공]

환경부는 수은 오염을 줄이기 위한 국제협약인 ‘미나마타 협약’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수은 통합측정망 운영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2016년부터 5년간 측정망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앞서 2012년에는 ‘담수 어패류 섭취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했다. 임산부의 경우 쏘가리·배스 등 7개 담수 어종을 주 2회 이상 섭취할 경우, 어린이가 쏘가리를 주 2회 이상 섭취할 때는 유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유명무실하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정밀 모니터링을 강화해 지역별 어종별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안내판도 설치해서 임산부와 어린이 등 취약계층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7월 부산 기장군의 양식장 3곳에서는 넙치(광어)에서 기준치를 웃도는 수은이 검출됐고, 해양수산부는 해당 양식장에서 양식·보관 중인 모든 넙치에 대해 출하를 중단하고 폐기하도록 조치한 바 있다. 당시에는 넙치 먹이인 가다랑어 부산물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르면 내년에 미나마타 협약이 국내에도 발효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더 철저한 수은 모니터링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천=천권필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feeling@joongang.co.kr

미나마타병

일본 구마모토 현(縣) 작은 어촌 마을 미나마타에서 발생한 수은 중독사고다. 1956년 처음 발견됐는데, 바닷가 마을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손발이 마비되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등 중추신경계 이상으로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다. 메틸수은에 오염된 해산물을 먹은 게 원인으로 밝혀진 1968년까지 신일본질소비료(칫소) 공장에서는 폐수 배출을 계속했다. 2001년 3월까지 2265명이 미나마타병 환자로 공식 인정됐으며, 1만 명 이상이 보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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