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동생 떠났지만 나라도 은혜 갚아야죠”…헌혈왕 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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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 100회 헌혈을 해 대한적십자사 헌혈 유공장 명예장을 받은 황창호 울산시청 주무관. 최은경 기자

5년 동안 100회 헌혈을 해 대한적십자사 헌혈 유공장 명예장을 받은 황창호 울산시청 주무관. 최은경 기자

“사실 피 뽑는 동안 아무 생각이 안 들어요. 그러다가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싶으면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5년간 헌혈 100회 울산시 황창호 주무관 #백혈병 동생 치료 때 도움 받은 게 고마워 #헌혈 위해 1만보 걷기, 등산 등 몸 관리하고 #“사회에 좋은 영향 헌혈 계속하겠다” 다짐

‘헌혈 왕’으로 불리는 황창호(51) 울산시 회계과 주무관이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살짝 미소도 보였다. 황 주무관은 지난달 29일 울산 남구 신정동 공업탑 헌혈의 집에서 100번째 헌혈을 한 뒤 대한적십자사의 헌혈 유공장 명예장을 받았다. 유공장 명예장은 100회 이상 헌혈자에게 준다. 최근 3년 동안 전국에서 5000여 명이 이 명예장을 받았다. 황 주무관은 앞서 2014·2015년 유공장 은장(30회 이상)과 금장(50회 이상)을 받은 바 있다.

황 주무관의 명예장 수상이 특별한 것은 숨은 슬픈 사연이 있어서다. 그가 처음 헌혈을 한 것은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다. 이후 직장에서 가끔 단체 헌혈에 참여하곤 했지만 자발적으로  헌혈의 집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은 2013년 여름이었다. 세 살 어린 막내 남동생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직후다.

황 주무관은 “동생이 2년 넘게 치료하는 동안 혈액암 협회에서 골수 기증, 헌혈 같은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도움을 준 모든 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방법이 없어 헌혈로 은혜를 갚기로 했다”고 말했다.

5년여 동안 100회 헌혈을 했으니 한 달에 한두 차례 헌혈을 한 셈이다. 황 주무관이 한 헌혈은 전혈 19회, 혈장 73회, 혈소판 8회다. 전혈 헌혈은 한 번 하면 2개월 뒤에 할 수 있다. 혈장·혈소판 헌혈은 40분~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헌혈했다.

황 주무관은 “건강한 피를 나누려면 먼저 내 몸이 건강해야 한다”며 “매일 1만보 걷기, 주말 등산으로 혈압 등 건강 관리를 한다”고 말했다. 가끔 즐기는 음주는 헌혈한 직후에만 한다.

마음 먹으면 꼭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는 황 주무관은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이 같은 글귀를 넣고 다닌다. 최은경 기자

마음 먹으면 꼭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는 황 주무관은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이 같은 글귀를 넣고 다닌다. 최은경 기자

그동안 받은 헌혈증은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일부는 필요한 곳에 쓰려고 보관하고 있다. 황 주무관의 영향을 받아 대학교 1학년인 딸 역시 헌혈의 집을 자주 찾는다. 딸은 명예장을 받은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면서도 괜한 걱정에 너무 자주 하지는 말라고 한다. 그의 헌혈 소식에 울산시청 일부 동료 역시 헌혈 나눔을 시작했다.

1992년부터 울산 동구청 등에서 일해온 황 주무관은 2014년 울산시청에 발령받아 운전 업무를 하고 있다. 현재는 시청 직원들의 통근 버스를 운전한다. 키 178㎝, 몸무게 90㎏의 건장한 체격의 황 주무관은 “한 걸음씩 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보통 시민으로 밝은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아 기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헌혈을 계속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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