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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사칭범에게 속아넘어가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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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호 14면

석영중의 맵핑 도스토옙스키 <40> 트베리: 마음속의 ‘변두리’

러시아 최고의 극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희극 『검찰관』은 하급 관리를 검찰관으로 오인한 마을 사람들의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화가 보클렙스키가 그린 『검찰관』의 삽화

러시아 최고의 극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희극 『검찰관』은 하급 관리를 검찰관으로 오인한 마을 사람들의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화가 보클렙스키가 그린 『검찰관』의 삽화

잠깐 시곗바늘을 뒤로 돌려보자. 1859년 8월 19일, 시베리아 유형을 마친 도스토옙스키는 부인과 함께 트베리에 도착했다. 가구 딸린 셋집을 찾을 수 없어 우왕좌왕하다가 갈랴니 호텔의 한 층에 마련된, 호텔방도 아니고 아파트도 아닌 어중간한 숙소를 한 달에 11루블 내고 빌렸다. 페테르부르크 거주 허가가 나올 때까지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도스토옙스키는 트베리가 “세미팔라틴스크보다 천 배나 더 허접하다”며 구시렁거렸다. 이 도시에서 문자 그대로 ‘탈출’하기 위해 온갖 인맥을 다 동원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지형으로 보나 랜드마크로 보나 트베리는 소설 『악령』의 배경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주장했고 또 다른 연구자들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반박했다. 양쪽 다 일리가 있다. 트베리가 오랜 세월 도스토옙스키의 뇌리 속에 남아 있다가 『악령』에서 되살아난 것은 맞다. 단, 지형의 일치 여부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차원에서 그랬다.

지방 소도시에서 심리적 고립감에 시달린 도스토옙스키

트베리 시에 있는 도스토옙스키 거리(윗 사진). 시베리아 유형을 마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던 도스토옙스키는 트베리의 갈랴니 호텔에서 약 넉달 간 머물렀다. 호텔이었던 건물에 그의 체류를 기념하는 현판이 붙어있다(아래 사진).

트베리 시에 있는 도스토옙스키 거리(윗 사진). 시베리아 유형을 마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던 도스토옙스키는 트베리의 갈랴니 호텔에서 약 넉달 간 머물렀다. 호텔이었던 건물에 그의 체류를 기념하는 현판이 붙어있다(아래 사진).

3월 중순인데도 모스크바는 폭설과 혹한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트베리는 모스크바 중심을 관통하는 트베르스카야 거리에서 북쪽으로 곧장 2시간 반 정도 달리면 나온다. 초행길에 날씨마저 너무 궂어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LG전자 최성식 부장이 흔쾌히 차편을 제공해 주어 마음 편하게 답사 길에 올랐다. 마침 모스크바에 있던 홍지인 박사도 합류했다. 편안한 승용차에 앉아 홍 박사가 싸가지고 온 러시아 주전부리를 먹으며 노닥거리다 보니 금방 트베리에 도착했다. 국도 양 옆으로 펼쳐지는 눈 덮인 자작나무 숲과 러시아 시골 마을이 동화 속 삽화 같았다.

대문호가 그토록 심하게 험담을 늘어놓았는데도 트베리 시는 2017년 6월 23일, 갈랴니 호텔이던 건물에 현판을 걸어 그의 짧은 거주를 기념해주었다. “위대한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1859년 8월 19일부터 12월 19일까지 이 건물에 거주했다.”

‘도스토옙스키 거리’를 지나 소설 속 슈피굴린 공장의 모델이 되었던 바그자노프 섬유공장(19세기 이름은 카울린 공장)까지 가보았다. 공장은 바로 최근까지 가동했다고 인터넷에 나와 있지만 겉보기에는 폐가 같았다. ‘고풍스러운’ 전차와 시내버스와 낮은 건물들이 한 세기 전의 읍내 풍경을 연상시켰다. 그런가 하면 세련된 인터넷 카페와 부티크와 이어폰을 귀에 꽂은 멋쟁이 젊은이들이 그리는 풍경은 영락없는 21세기였다. 폭설로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구별이 안 되어 전반적으로 황량해보였다. 하지만 화창한 날에는 트베리 역시 여느 도시 못지않게 활기찰 것 같았다.

도스토옙스키는 왜 그토록 이곳을 싫어했을까. 왜 『악령』에서 하필이면 이 도시를 불러냈을까. 정치소설의 배경으로는 대도시가 더 낫지 않을까. 여러 문헌과 여행기를 읽어보면 19세기의 트베리는 ‘허접’과는 거리가 멀었다. 1763년 대형 화재가 발생해 시 전체를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건축했기 때문에 동급의 다른 도시보다 월등하게 깔끔했다. 공기는 청정했고, 중심가인 밀리온나야 거리 양 옆에는 번듯한 주택이 도열해 있었으며, 정교회 성당은 위용을 자랑했다.

황실 가족과 푸슈킨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두 수도를 오가는 길에 이곳에 들렀다. 푸슈킨은 특히 도스토옙스키가 거주했던 갈랴니 호텔에 여러 번 묵었으며 호텔 레스토랑의 “파르메산 치즈를 넣은 마카로니”가 맛있다고 칭찬했다. 당시 도스토옙스키를 방문했던 지인들도 그만하면 주거환경으로 손색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니까 도스토옙스키가 트베리를 싫어한 데는 실질적인 이유보다는 심리적인 이유가 더 컸다는 얘기다. 시베리아에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한 부인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달렸다. 트베리에서는 간질 발작도 더 심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고립감이었다. “여기 갇혀버렸어요. 감옥이 따로 없어요.” 출판사·잡지사·서적상·도서관 등 문학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것은 글로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치명적이었다.

당신은 ‘중앙’과 ‘그물망’에서 소외되어 있습니까?  

러시아 그래픽 아티스트 미하일 가브리츠코프가 그린 『악령』의 일러스트. 19세기 트베리 시의 모습을 담고 있다.

러시아 그래픽 아티스트 미하일 가브리츠코프가 그린 『악령』의 일러스트. 19세기 트베리 시의 모습을 담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지방 소도시 삶의 한 가지 특성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여기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요.”

여기서 지방이라는 것은 ‘시골’과는 다른 의미다. 도시이긴 하지만 수도를 기준으로 중심이 아닌 주변, 대도시가 아닌 변두리 소도시를 의미한다. 당시 러시아에서 수도와 지방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났다. 그 격차가 너무 커서 오히려 지방 도시들 간의 차이는 거의 느껴지지 못할 정도였다. 체호프가 말했듯이 “러시아에서 지방은 어디고 다 똑같다.”

어떤 점에서는 아예 시골에서 사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시골에는 광활한 대자연과 고유한 전통과 풍속이, 그러니까 나름의 ‘색깔’이 있었다. 반면 다 똑같이 고만고만한 지방 소도시에는 정체와 부동과 공허만 있었다.

지방 도시의 공허를 채워준 것은 수도에 대한 환상이었다. 범속하고 단조로운 지방의 삶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중앙과 연결되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본 적은 없지만 반드시 있다고 여겨지는, 그리고 있어야만 하는 어마어마한 ‘중앙’에 맹목적으로 매달렸다. 그들은 언제나 ‘중앙’에 복종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중앙’ 관료를 사칭하는 사기꾼들이 방방곡곡을 헤집고 다닐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러시아 문학사상 지방 도시와 사칭의 문제를 가장 심오하게 형상화한 작가는 고골이다. 그의 유명한 드라마 『검찰관』을 보자. 하급관리 흘례스타코프는 도박판에서 여비를 몽땅 털리는 바람에 지방 소도시의 여관에 오도가도 못하고 묶여있다. 여관 식당에 식사하러 들른 마을의 수다쟁이 지주 두 사람이 그를 보고 밀파된 검찰관으로 오인하여 시장에게 알린다. 마을은 발칵 뒤집힌다. 그때부터 시장을 비롯한 그 마을의 부패한 관리들, 그리고 나중에는 일반 시민들까지 그를 찾아와 온갖 뇌물을 다 바친다. 뇌물을 다 챙기고 심지어 시장 부인과 딸까지 희롱한 뒤 흘례스타코프가 떠나자 진짜 검찰관이 도착한다.

흘례스타코프는 고골의 설명에 따르면 “스물세 살 가량의 청년으로 약간 아둔한 얼간이다. 관청의 사무실에서 늘 ‘멍청이’라고 불리는 족속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아둔한 얼간이가 한 마을 전체를 완전히 속였다. 흘레스타코프는 그냥 돈이 없어 여관에 죽치고 앉아 있었을 뿐 마을 사람들을 속일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이 이를테면 ‘자진해서’ 속아준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호학자 로트만은 흘례스타코프에 관한 논문에서 바로 이 문제를 제기하고 답을 “특수한 환경”에서 찾는다. “다양한 유형의 소외가 지배적인 곳에서만 흘례스타코프 같이 사칭할 수 있다.” ‘중심’으로부터 소외된 ‘변두리’였기에 사칭이 먹혀들었다는 얘기다.

‘주변의 인간’이 겪는 소외감은 본질의 상실로 이어져

『악령』에서 사칭의 스케일은 정치적으로 확대되지만 소외의 원리는 같다. 현지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협잡꾼 표트르의 농간에 넘어간 것은 소외가 불러일으키는 중앙에 대한 강박적인 환상 때문이다. 니힐리스트 행동대장 표트르는 지주의 아들 스타브로긴을 ‘지도자’로 내세우고는 뒤에서 그를 조종한다. 그가 “비밀스러운 세계와 아주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며 무슨 위임을 받고 이곳에 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도시 전체가 알아서 ‘납작 엎드린다.’ 소설은 지속적으로 “이곳”과 “그곳”을 대립시킨다. “이곳”은 ‘아무 것도 아닌 곳’이고 “그곳”은 ‘모든 것인 곳’이다. 표트르는 “그곳”의 지령을 받고 “이곳”에 왔으며 “그곳”에 모든 것을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어요. ‘그곳’에서는 머리칼 한 가닥, 티끌 한 조각도 그냥 잃어버리는 법이 없어요.”

그는 “어떤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중앙에 소속되어 있으며” “이 환상적인 중앙위원회”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나는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고 있어. 그러니 당신은 복종해야 돼.”

표트르는 ‘그물망’, 즉 요즘 식의 ‘네트워크’로 공포를 조장한다. 그가 ‘중앙’이란 단어와 함께 끊임없이 강조하는 단어는 ‘그물망’이다. ‘주변’은 ‘중앙’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중앙’과 연결되기를 미친 듯이 갈망한다. 표트르는 “수많은 매듭으로 이루어진 무한한 그물망이 전 러시아를 뒤덮고 있다”며 허풍을 떤다. 주민들은 너도 나도 그 무한한 그물망의 매듭이 되고 싶어 안달을 한다. 그물망이 진짜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게 있다고 믿는 태도가 문제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환상이 깨지는 일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모든 게 표트르의 사기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후에도 사람들은 “신비한 그물망”이 있다고 우긴다.

뉴욕대학교의 란즈베리 교수는 ‘주변’의 인간이 겪는 소외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라고 못박았다. 진짜 삶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중심’에서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상상이 깊어지면 인간은 결국 자신의 본질로부터 분리된다. 본질에서 분리될수록 인간은 외부와의 연결에 집착하고 집착은 더욱 큰 소외를 불러일으킨다. 인간이 저지르는 많은 우행들은 어쩌면 근본적으로 자기소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트베리가 『악령』의 실질적인 배경인가 아닌가는 큰 의미가 없다. 트베리는 어차피 상징이다. 결핍과 고독과 공허에 대한 비유다. ‘중심’과 연결을 향한 맹목적인 숭배가 파고들 여지를 제공하는 마음속의 균열이다. 오늘은 내 마음속의 트베리를 들여다보아야겠다.

고려대 노문과 교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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