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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혜초·칭기즈칸 군대도 건넜다, 동서 관문 타클라마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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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호 25면

윤태옥의 중국 기행 - 변방의 인문학

타클라마칸 사막의 고비(왼쪽)와 사구(오른쪽). 바람에 날린 모래가 쌓여서 사구가 된다. 보통 수십m인데 최고 300m에 이르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여인네의 부드러운 입술 같은 곡선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모래를 끊임없이 날려 보내는 악마의 혓바닥이다. 누런 쓰나미로 보이기도 한다. [사진 윤태옥]

타클라마칸 사막의 고비(왼쪽)와 사구(오른쪽). 바람에 날린 모래가 쌓여서 사구가 된다. 보통 수십m인데 최고 300m에 이르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여인네의 부드러운 입술 같은 곡선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모래를 끊임없이 날려 보내는 악마의 혓바닥이다. 누런 쓰나미로 보이기도 한다. [사진 윤태옥]

타클라마칸 사막은 또 하나의 로망이다. ‘죽음의 바다’나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별칭이 인간의 무모한 호기심에 경고하지만, 그것 때문에 여행의 로망은 더 증폭된다. 타클라마칸(塔克拉瑪干)은 위구르어로 ‘산 아래의 큰 사막’이란 말이다.

공포와 로망이 버무려진 6000㎞ 일주 #한반도 1.5배 ‘산 아래 큰 사막’ #악마 혓바닥 같은 모래 쓰나미 #‘누란의 미녀’ 등 남긴 서역 36국 #모래 속 폐허는 역사·고고학 보물 #유전·금광에 오아시스 농업지대 #열악하지만 ‘죽음의 바다’ 아니다

남으로는 쿤룬산맥, 서로는 파미르 고원, 북으로는 톈산산맥이 막아선, 동서 1400㎞, 남북 500㎞의 분지가 타림(塔里木)분지다. 이 분지 안에 가로 1000㎞, 세로 400㎞, 면적 33만㎢(한반도의 1.5배)의 사막이 바로 타클라마칸이다.

실크로드라는 명칭은 오리엔탈리즘 잔재

사막에도 물이 있다. 톈산이나 쿤룬산맥에는 4000m를 넘는 설산들이 즐비하다. 눈 위로 눈이 쌓이지만 속에서는 눈을 녹여 지하수로 흘려보낸다. 지하로 젖어 들었다가 지표로 나온 물은 강을 이뤄 타클라마칸에 생명수를 전해 준다. 타클라마칸에서 가장 큰 물줄기는 타림강이다. 쿤룬의 깊은 계곡에서 발원한 예얼창강(叶尔羌·야르칸트)과 허톈강이 각각 타클라마칸을 남에서 북으로 관통한 다음, 톈산에서 흘러온 아커쑤강과 합류한다. 이곳부터 타림강이라 하는데, 타클라마칸의 북변을 따라 동으로 1300여 ㎞나 흐른다. 그 종단은 뤄부포(羅布泊·로프노르) 호수다. 바다가 아니라 사막에서 단류가 되는 내륙하이다.

둘러싼 산맥과 가운데 사막 사이에는 오아시스가 띠처럼 연결된다. 타클라마칸의 오아시스는 상당한 농업지대다. 대추·면화·석류·호두·수박·멜론 등을 수없이 목도하게 된다. 오래전부터 도시국가들이 세워진 곳이다. 고대의 서역 36국 가운데 많은 수가 이곳이었다. 장건이 나서기 오래전부터 수많은 현지인이 오가던 길이다. 소그드 상인과 정벌군과 불승들의 길이었다. 그 가운데 현장도 혜초도 고선지도 있었다. 칭기즈칸 제국의 전사들과 사신들과 상단들이 동서양을 하나로 잇고 융합해낸 것도 이 길에서였다. 세계사가 형성된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훗날 서양학자가 붙인 실크로드라는 명칭이 많이 쓰이고 있지만 오리엔탈리즘의 냄새가 심하다. 유라시아 중앙로라고 해야 적절하지 않을까.

어떤 도시는 번성하고 어떤 도시는 모래에 묻혔다. 사막에서 다시 발견된 폐허는 역사학과 고고학에는 선물이었고, 여행객들에게는 전설의 매혹으로 다가왔다. 누란(樓蘭)과 미란(米蘭), 니아(尼雅) 등이 그런 유지(遺址)다.

일생에 한 번은 둔황을 포함해서 타클라마칸 일주를 여행으로 해보는 것은 어떨까. 크게 이동하는 거리만 5000㎞, 곳곳의 유적지나 풍경구 등을 들러 다니면 20~30일에 6000㎞는 되는 여행이다.

외국 여행객이 타클라마칸 일주를 하자면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에서 시작해야 한다. 첫날 톈산을 남으로 건너 투루판에 도착한다. 투루판 남부의 야딩호(艾丁湖)는 해발 -155m, 중국에서 가장 낮은 저지대이다. 하미(哈密)에서 하루를 묵으면 다음날 저녁 둔황에 닿는다. 둔황의 옥문관(玉門關)은 타클라마칸 북변의 톈산남로로 이어지고, 양관(陽關)은 서역남로로 통하는 관문이다.

둔황에서 아얼진산을 넘어 타클라마칸 남동단의 뤄창(若羌)을 향한다. 아커싸이(阿克塞) 카자흐족 자치현과 망아이(茫崖)에서 하루씩 묵어야 한다. 망아이를 나서면 곧 아얼진 산맥의 내리막 계곡이다. 훙류거우(紅柳溝)라는 낭만적인 지명을 갖고 있지만 불모지가 계속된다. 아얼진산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한때 많은 중국인이 이곳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십년 전만 해도 뤄창의 도심에는 구걸하는 이들이 심심찮게 눈에 뜨였다고 한다. 금광에 전 재산을 던졌다가 패가한 사람들이었다. 골드러쉬의 욕망과 좌절은 도처에 깔려있다.

‘누란의 미녀’로 유명한 누란박물관. [사진 윤태옥]

‘누란의 미녀’로 유명한 누란박물관. [사진 윤태옥]

뤄창에는 누란 박물관이 있다. 누란은 서역 36국의 하나로 고고학에서는 ‘누란의 미녀’가 유명하다. 1980년 누란고성에서 발굴된 여성의 미라를 컴퓨터 영상으로 복원하면서 붙여진 별칭이다. 복원된 미녀는 누란 박물관의 외벽에 커다란 부조로도 새겨져 있다.

뤄창 다음은 체모(且末), 이곳에서 타클라마칸의 한복판으로 들어갈 수 있다. 타클라마칸에는 두 개의 사막공로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룬타이~타중~민펑으로 이어지는 216번 국도(1995년 개통)와 쿠처~허톈으로 이어지는 217번 국도(2008년 개통)가 있다. 타중에서 갈라진 사막공로는 체모로도 연결된다. 타중(塔中)은 말 그대로 타클라마칸의 중앙이다. 아침에 체모를 출발해 타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저녁에 민펑으로 나올 수 있다. 끝도 없는 사구의 물결을 하루 종일 보게 된다.

타중에는 유전이 있다. 유전 때문에 사막공로를 낸 것이다. 금광이 개인적 욕망의 막장이라면 유전은 국가적 욕망의 결정판이다. 중동의 끊임없는 전란의 핵심은 유전이다.

민펑 다음은 허톈(和田)이다. 호탄이라고도 하는, 옥(玉)으로 유명한 바로 그곳이다. 쿤룬산맥에서 북류하는 계곡 곳곳에서 옥이 생산되지만 브랜드는 허톈으로 통용된다. 요즘은 외지의 옥을 가져와서 산지를 세탁하기도 한다. 인간의 탐욕은 어디든 비슷하다.

허텐에서 서북 방향으로 계속 가면 예청(叶城) 사처(莎車· 야르칸트)로 이어진다. 사처부터는 카스(喀什·카슈가르) 지구에 속한다. 사처에서 예얼창강을 따라 북으로 가면 마이가이티(麦盖提)현이 있다. 마이가이티는 스웨덴의 탐험가이자 러시아의 정보제공자였던 스벤 헤딘이 1895년 봄 타클라마칸 횡단에 도전했던 마을이다. 스벤 헤딘은 마이가이티를 출발해서 허톈강 서안의 마자르타그산(麻札塔格山)까지 27일에 걸친 죽음의 횡단을 감행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사막까지 촘촘히 뒤덮은 인간의 탐욕

카스는 타클라마칸의 서쪽 끝, 신장 남서부의 중심이다. 이슬람과 위구르족의 향기가 진하다. 여행자들에게는 파미르 고원이나 키르기스스탄으로 오가는 길목이다. 카스 사람들은 “카스에 오지 않으면 신장에 오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전통시대의 교역로에서도 그랬지만 21세기에도 시진핑의 일대일로에서 관문으로서 중요한 위상을 갖고 있다.

카스에서 동으로 길을 재촉하여 아커쑤로 향한다. 아커쑤 부근을 지날 때 고속도로 북쪽 노변에는 화려한 아단지모(雅丹地貌)가 나타난다. 중국에 없는 게 뭐냐는 탄식이 나올 정도다. 그다음 쿠처~룬타이~쿠얼러로 이어진다. 쿠처는 이 글의 1편에서 찾아갔던 신비대협곡과 키질석굴이 있는 곳이다. 룬타이는 3편 한무제의 죄기조를 회고했던 곳이다. 쿠얼러는 2편에서 이야기했던 바인궈렁 몽골 자치주의 행정중심지이다.

시계방향으로 돌아온 타클라마칸 일주는 쿠얼러에서 우루무치로 돌아가게 된다. 사람들에게 타클라마칸은 막막한 공포와 묘한 로망이 함께 버무려져 있다. 살기 힘든 사막으로 향하는, 도시에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로망이랄까. 도시에서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고, 막연한 신비감에 취한 자기 기망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는 분명한 것은, 타클라마칸은 생존조건이 열악하지만 죽음의 바다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막에서보다 아스팔트에서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 죽음은 오히려 도시의 일상이 아닌가.

사람 없는 사막은 자연 그 자체인 것 같지만 그것만도 아니다. 이미 인간의 욕망이 촘촘하게 뒤덮고 있다. 중국 당국이 말하는 신장의 분리주의를 논하지 않더라도, 유전과 사막공로와 금광과 가짜 옥들을 상기해 보라. 욕망이 넘치고 있다.

그래도 타클라마칸은 사막이고 자연이다. 장엄하고 광활하면서도 잔인하기까지 한 자연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소심한 나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 타클라마칸을 감상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도시로 돌아와서는 대자연으로부터 큰 가르침이라도 얻은 듯 으스대기도 한다. 실제로는 타클라마칸이 나를 유혹해서 짧은 희열을 맛보게 한 다음에는 가차 없이 쫓아냈을 뿐이다. 그렇게 쫓겨 와서는 그곳을 회상하고 상상하고 공상한다. 타클라마칸은 로망이다.

윤태옥 중국 여행객
중국에 머물거나 여행한 지 13년째다. 그동안 일년의 반은 중국 어딘가를 여행했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경계를 걷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 엠넷 편성국장, 크림엔터테인먼트 사업총괄 등을 지냈다. 『중국 민가기행』 『중국식객』 『길 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독립운동사』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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