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낮 12시20분쯤 경북 경주시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 솔거미술관. 푸른 눈의 외국인 노신사와 남색 정장을 입은 여성이 나란히 미술관으로 다가왔다. 자켓과 넥타이를 녹색으로 맞춘 노신사는 게르하르트 슈뢰더(74) 전 독일 총리였다. 그의 옆에서 동행하고 있는 여성은 지난달 28일 슈뢰더 전 총리와 결혼식을 올린 김소연(48)씨였다.
지난달 28일 가약 맺은 슈뢰더·김소연 부부…경주서 신혼여행
제7대 독일 총리를 지냈던 슈뢰더 전 총리는 이날 '한국 사위'로서 새 각시의 고국을 신혼여행지로 택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그 중에서도 경북을 여행하길 원했다. 전날 조용히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둘만의 시간의 보낸 슈뢰더·김소연 부부는 이날만큼은 국내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둘의 사랑을 과시했다.
슈뢰더·김소연 부부는 전날 하회마을 여행을 마치고 밤늦게 경주로 내려와 블루원리조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부가 찾은 곳은 경주시 배동 삼릉숲 인근에 위치한 박대성(73) 화백의 작업실이었다. 박 화백은 슈뢰더 전 총리가 신혼여행지로 경주를 찾게 된 주요한 이유다.
슈뢰더 전 총리는 "지난 2월 부인과 서울 인사동을 갔다가 우연히 들른 갤러리에서 한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그 자리에서 작품을 구입했다"며 "부인과 상의도 없이 구입한 그 작품이 바로 박 화백의 그림이었다"고 박 화백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슈뢰더·김소연 부부는 솔거미술관 곳곳을 둘러보며 박 화백의 작품을 감상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매우 좋다'는 뜻의 "지아 갈른(sehr gern)"을 연신 외쳤다. 통역가 출신인 부인을 통해 박 화백에게 여러 질문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미술관을 둘러보는 내내 부부는 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미술관을 모두 둘러본 슈뢰더 전 총리는 방명록에 독일어로 '잊을 수 없는 대작들을 감상하게 돼 감사드립니다'라고 적었다. 슈뢰더 전 총리의 방명록 아래 김소연씨가 번역을 붙였다. 경주엑스포 측은 슈뢰더 전 총리에게 고령토로 만든 다기 세트를 선물로 전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시하는 한편 최근 화해국면에 접어든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이번 한국 방문은 정치인이 아니라 '한국 사위'로 방문한 것이지만 남북관계 회복와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돕겠다"고 말했다.
솔거미술관에서 1시간여를 보낸 슈뢰더·김소연 부부는 인근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엔 불국사와 석굴암, 경주 남산 등을 둘러볼 계획이다. 저녁에는 부부의 오랜 친구인 노희찬(75) 삼일방직 대표의 집에서 만찬을 함께하기로 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재임 기간(1998~2005년) 독일 경제를 살리고 노동개혁을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부인 김씨는 국내외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통역을 맡으며 이름을 알린 전문 통역가다.
경주=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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