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가 등록금을 받다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학 등록금이 투쟁과 흥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성과 자율의 민주적 대학 분위기를 그토록 열망해왔던 대학생 스스로가 등록금을 볼모로 잡아 투쟁의 결집력을 노리고있고, 「올린다」「못 올린다」로 청렴해야 할 대학 캠퍼스를 시장바닥의 난장처럼 어지럽히고 있다.
왜 우리의 대학은 이토록 끝갈 데를 모를만큼 최악의 막바지 길만을 골라 치달아 가야 되는가. 억압과 감시의 대상으로 10여년을 보낸 대학이 갑작스런 민주화와 자율화의 분위기 탓으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되었다고 보기에는 1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 1년 동안 스승의 머리를 깎아버리고 교수연구실에 못질을 해버리며 총장선출에까지 학생들이 난입하기에 이르는 방만한 자유가 제멋대로 이뤄졌고 이젠 대학의 등록금까지 학생회가 접수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성대 학생회는 신입생들로부터 「총학생회의 통보가 있기까지 등록을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냈었고, 명지대 학생회는 은행에 구좌까지 개설해 1백여명의 신입생 등록금을 접수했다는 충격적인 사태로까지 발전하는가 하면 36개 대학이 「국공립대 총련」을 결성해 연대투쟁을 벌여 나가기로 결의까지 했다. 대학교육의 주체가 누구이며 대학운영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도시 종잡을 수 없을만큼 혼돈에 혼돈을 거듭하는 대학가의 난장판이 언제쯤 이성을 되찾을지 가늠할 수가 없다.
물론 등록금 인상 파동은 대학측이 불씨를 만들어낸 자승자박의 결과였다. 등록금 자율화의 첫 해인 금년 학교측이 결의해버린 최고 31% 인상이라는 엄청난 인상폭이 오늘의 사태를 몰고 온 첫번째 요인이 된다. 사학재단의 부실과 비리에 대한 아무런 자책과 대책없이 쪼들리는 재정난을 등록금 인상만으로 해결하려 든 학교측의 고식적 해결방식이 사태악화를 몰고 온 단서가 된다.
사태악화의 두번째 요인은 학교측의 등록금인상계획을 볼모로 감아 운동권 학생들이 이를 세력확산의 기회로 잡았다는데 있다. 등록금자율화라는 방침이 세워지자마자 학부모의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폭 인상하려던 학교측이나 그 인상을 빌미로 삼아 당장 세력확장의 투쟁대상으로 몰고 가는 학생측이나 모두 자율과 자유를 자기 이익에 맞춰 이용하려고만 드는 비이성적 집단이라고 할 수 밖에 없지않은가.
처음엔 30% 인상하겠다고 큰소리쳐놓고는 학생들이 인상반대의 으름장을 놓으니 10%만 올리면 어떻겠냐고 학생들에게 사정하는 학교측의 모양이나 총장선출에 한몫 하고 등록금 접수창구까지 버젓이 차려놓는 학생회의 득의만면한 처사, 이 모두 민주화시대를 역행하는 기회주의적 행동일 뿐이다.
민주화의 기운을 몰고 온 전위가 대학이었다면 대학사회의 문제 또한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자율과 이성의 바탕 위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려 든다면 등록금 파동은 문제거리가 될 수 없는 매우 쉬운 일이다. 이미 대학운영을 공·사립 막론하고 대학교수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는 형편에서 대학예·결산의 공개와 재단측의 장기발전계획 및 실상을 학생회 쪽에 이해시킴으로써 합리적 인상폭을 결정했으면 될 일이었다.
이미 이러한 절차를 밟아 마찰 없이 등록금문제를 해결해버린 대학도 있는 이상, 늦은 감은 있지만 이러한 공개와 이해를 통해서 선의의 신입생들이 볼 피해를 극소화시키는 데 학교측은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일이다.
문제를 풀려는 입장보다 더 사태를 어렵게 만드는데 뜻을 두고 있는 일부 학생들의「등록금 볼모」사태를 막기 위해서도 대학과 학부모는 연계적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