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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이별 범죄…경찰, 사랑싸움이라며 돌아가는 게 현실”

중앙일보

입력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 씨가 2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 씨가 2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헤어진 데 앙심을 품고 연인은 물론 가족까지 무참하게 보복하는 사건이 잇따르자 사회적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분석한 결과 혼인이나 데이트 관계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5명, 살인미수 피해 여성은 최소 103명이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결국 인명 피해가 날 것을 알지만, 제도가 미비하다”며 “현재로써는 가해자를 미리 감시하고, 엄격하게 처벌할 법률이 없다”고 지적했다.

“경찰, ‘사랑싸움 좋게 해결하세요’ 하고 돌아가는 게 현실”

이 교수는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통화에서 “강서구 등촌동 살인사건의 경우 가정 폭력으로 여러 번 신고가 됐던 사건이고, 심지어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았던 전 남편에 의해 주차장에서 살해됐다”며 “이런 고위험군 가정 폭력 사건의 경우 같은 형사가 현장에 나가지 않으면 이런 사실을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신고할 때마다 출동하는 형사가 다르고, 현장에서는 전과 기록을 조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어 “접근 금지가 됐던 사건인지, 폭력 전과가 있는지, 몇 년 전부터 살해 위협을 하는지 등의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다”며 “대체로 같은 집에 살고 있거나 살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랑싸움 좋게 해결하세요’라고 훈계 내지는 경고 정도 하고 돌아가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가정폭력, 반의사 불벌죄 폐지해야”

이 교수는 또 가정폭력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자가 죽을 것처럼 고통받을 때는 신고했다가도 ‘나중에 신고한 것 때문에 배우자나 애인이 죽이겠다고 또 덤벼들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막상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면 ‘고소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며 “외국에서는 다 형사 사건으로 처리하지 이렇게 유야무야 개입을 안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스토킹, 신고해봤자 벌금 8만원”

지난 24일 강원도 춘천에서 심모(27)씨가 예비신부를 살해하고 시신 일부를 훼손했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부모는 “심씨가 하루에도 20번 넘게 통화했다”며 스토킹 범죄를 주장하고 있다. 강서구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피해자 차량에 GPS를 달고, 주변을 서성이는 모습이 CCTV에 다수 목격됐다.

이 교수는 “가해자는 장기간 스토킹을 한 다음 죽이게 된다”며 “그런데 스토킹은 우리나라에서 경범죄밖에 처벌이 안 된다. 아무리 신고해봤자 8만원 벌금 나오는 정도가 최고”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앙심을 품은 입장에서는 8만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이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고, 살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평범하고 착했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기는 어려워”

이 교수는 “평범하고 착했던 사람이 이별을 통보받는 순간 갑자기 돌변하기는 어렵다”며 “모든 남자가 다 이렇게 위험한 게 아니다. 위험 징후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집착’을 강조하며 “집착이 심하고 이전에도 폭행한 적 있는 사람들에 의해 범죄가 일어난다. 교제하는 도중 징후를 예민하게 감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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