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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펜이 시대와 작가를 연결하자 별처럼 빛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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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15년 서울 장충동 한국현대문학관에서 열린 김윤식 저서 특별전 ‘읽다 그리고 쓰다’가 열릴 당시 고인의 모습. 본지 인터뷰에서 ’아침 먹고 나서 낮 12시까지 하루 4, 5시간을 여전히 쓴다“고 했었다. [중앙포토]

2015년 서울 장충동 한국현대문학관에서 열린 김윤식 저서 특별전 ‘읽다 그리고 쓰다’가 열릴 당시 고인의 모습. 본지 인터뷰에서 ’아침 먹고 나서 낮 12시까지 하루 4, 5시간을 여전히 쓴다“고 했었다. [중앙포토]

원로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25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82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원고지 하루 20장 … 250권 넘는 저서 #근대문학 연구 초석 다진 국문학자 #“소설은 따끈따끈할 때 읽어야” #신인 작가도 아우른 문학평론가 #윤대녕·김애란 등 첫 조명도

“선생이 읽지 않은 소설은 아직 쓰이지 않은 것뿐이다.”(소설가 이승우) “작가와 작가를,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자 밤하늘 전체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게 빛난다는 사실을 저는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소설가 김연수)

고인이 아꼈던 문인들이 생전 바쳤던 헌사(獻詞)처럼 소설을 읽고 그에 관해 쓰고 연구하며 가르친 한 평생이었다. 기념비적인 저작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로 근대문학 연구의 초석을 다진 국문학자였고, “소설은 나오자마자 따끈따끈할 때 읽어야 한다”며 최후의 순간까지 소설책을 가까이했던 영원한 현장 비평가였다.

갓 등단한 작가까지 빠뜨리지 않고 읽는 것으로 유명해 윤대녕·김애란의 소설을 처음으로 조명했고, 1990년대 후반 ‘운동권 후일담’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작가 공지영의 세계를 분석하기도 했다.

200자 원고지로 하루 20장씩, 기력이 달린 말년에는 하루에 10장씩 빠짐없이 쓰는 농경적 근면성으로 250권이 넘는 전무후무한 분량의 저서를 남겼다.

고인이 평생 몸담았던 서울대 국문과 제자인 문학평론가 정홍수씨는 “소설 공부가 단순한 예술 장르 연구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사내라면 한 번 몸을 던져볼 만한 일이라며 몇 번씩 의미부여를 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읽고 쓸 수 있는지 항상 놀라울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1936년 경남 진영에서 태어난 고인은 나중에 교장 선생님이 되라는 부친의 권유에 서울대 국어교육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군 제대와 함께 국문학 연구로 방향을 틀어 서울대 국문과에서 석박사를 마치고 1968년 서울대 교양과정부 전임강사로 임용됐다.

2002년 황순원문학상 최종심에 참가한 김용성·김윤식·박완서·이문구씨(왼쪽부터). [중앙포토]

2002년 황순원문학상 최종심에 참가한 김용성·김윤식·박완서·이문구씨(왼쪽부터). [중앙포토]

고인은 생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민족은 열등한 민족이라는 식민사관이 팽배하던 시절, 일본이 먼저 받아들인 근대의 정체는 뭐냐, 국민국가과 자본주의의 결합이다, 그럼 그걸 어떻게 극복해야 하느냐 하는 고민 끝에 시작한 게 문학공부였다”고 회고했다.

문학연구가 이땅의 근대화가 가능한지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얘기다. 루카치 등 서구 리얼리즘 이론을 활발하게 받아들여 한국 근대문학사를 정리하려 했고 생전 스스로 ‘작은 글쓰기’라고 불렀던 개별 작품 분석을 통해 문학사의 알맹이를 채우려 했다.

그 과정에서 일제 치하 일본어와 한국서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근대문인들의 고충을 ‘이중어 글쓰기’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를 통해 당시로서는 금기시돼 있던 ‘카프’ 문인들을 공론장에 끄집어 내기도 했다. 1920년대부터 해방 직전까지 예술사회 운동으로서 문예이론 변화 양상을 연구하며 카프를 정면에서 다뤘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연구 끝에 집필한 평전 『이광수와 그의 시대』는 근대의 대표적인 인물을 철저히 뒤져 한국인의 정신사를 밝히겠다는 기획의 일환이었다.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가정에서의 훈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이광수의 기본 심성을 고아의식으로 이해하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관념적인 이상향을 추구한 돈키호테였다고 이광수의 내면 복원을 시도했다.

200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으며, 예술원 문학분과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대한민국황조근정훈장(2001)과 은관문화훈장(2016)을 받았다. 요산문학상, 대산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김환태문학평론상을 수상했고 이병주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호암상 위원 등을 지냈다. 빈소는 서울대 병원에 차려졌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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