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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Mr. 밀리터리] 전쟁을 뒤집을 지상군 무인 전투체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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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육군 미래 걸린 드론봇 전투체계, 예산은 쥐꼬리

○○○○년 어느 날. 북한군이 우리 군에 장사정포를 쏘고 기갑부대는 전차와 장갑차를 앞세워 비무장지대(DMZ)를 돌파했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침공에 육군은 전방에 배치된 부대로 방어에 나서면서 의외의 무기를 날렸다. K-9 자주포에서 쏜 수백발의 포탄에서 무인기들이 대량으로 튀어나왔다. 작은 무인기는 북한군 전차와 장갑차 위를 날더니 표적을 확인한 뒤 곧바로 고속의 폭탄을 쐈다. 전차와 장갑차는 얇은 상부 장갑 철판이 뚫리고 그 자리에서 기동을 멈췄다. 육군이 구상하는 드론봇(드론+로봇) 전투체계의 가상 시나리오다.

야포와 미사일로 드론 투사 #전투로봇이 적을 삽시간에 제거 #드론봇 전투, 군 구조 완전 개편 #2030년까지 병력 30%를 로봇으로 #미국, 개발에 한국의 10배 투입 #뒤처지면 활로 조총과 싸우는 꼴

그런가 하면 큰 드론들이 전투지역 상공에 도착하자 그 속에서 작은 드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군이 쏜 미사일도 날아왔다. 이 미사일도 적 상공에 이르자 미사일 뚜껑이 열리면서 드론들이 튀어나왔다. 소형 드론이 보내온 영상을 통해 적을 확인한 우리 군이 공격을 지시하자 드론들이 적진을 향해 날아가 자폭했다. 드론의 강력한 폭발에 적 진지는 물론 장사정포도 정확하게 파괴됐다. 이른바 드론의 군집비행을 통한 벌떼작전이다. 이어 사단과 군단에서 보낸 덩치가 큰 중고도 무인기는 공대지 미사일로 적의 주요 벙커와 전차를 정밀 타격했다. 적은 우리 군 병력을 미처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드론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드론 공격에 적진의 주요 무기체계와 진지가 파괴되자 이번엔 로봇을 앞세운 보병들이 공격에 나섰다. 3∼5명으로 구성된 드론봇팀은 중무장한 로봇과 함께 있었다. 드론봇팀은 전투로봇을 먼저 적진에 보냈다. 로봇은 적의 소총 정도에 피격받아도 끄떡없고 레이저로 거리와 방향을 측정해 기관총을 정확하게 쏠 수 있다. 로봇은 인간 전투병의 지시를 받아 적을 삽시간에 제압했다. 적진이 와해해 교란에 빠지자 인간 전투병들이 박쥐 크기의 초소형 드론을 띄웠다. 이 드론이 보내온 영상으로 적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런 뒤 전투병들은 사기가 완전히 꺾인 적을 포로로 잡고, 진지를 점령했다.

공상 영화나 컴퓨터 게임에나 볼 수 있는 전투광경이지만 육군이 구상 중인 새로운 전투체계다. 인구 절벽 등으로 대폭 줄어들 병력을 보완하고 미래 전장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산물인 인공지능(AI)과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3D 및 4D 프린팅, 사물인터넷(IOT) 등을 활용해 2030년까지 드론봇 전투체계를 완성한다는 게 목표다. 이에 따라 육군 교육사령부는 드론봇 전투체계에 맞는 부대 구조와 편제를 설계 중이다. 분대-소대-중대-대대-연대-여단-사단-군단의 복잡한 재래식 부대구조 가운데 일부 단계는 없어질 전망이다. 드론봇 전투체계 분대 또는 팀을 몇 명으로 구성할지도 실험을 거쳐 전투효과를 검증할 계획이다. 육군은 앞으로 모든 부대의 병력 30%를 드론봇으로 대체할 방침이다.

드론봇 전투체계가 구성되면 전투방법은 완전히 달라진다. 대용량 통신이 가능한 지휘통제시스템을 갖춰 신속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지상과 공중에서 한꺼번에 작전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의 『관찰→판단→결심→행동』의 전투 사이클을 거의 동시에 실시해 전투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그렇게 되면 북한군처럼 재래식 군대는 우리 군의 공격을 받은 뒤 미처 상황을 판단할 여유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또 전투에 들어가게 된다. 전투 속도의 효과는 과거 이라크전(2003)에서 검증됐다. 당시 미군은 이라크군을 일방적으로 공격했고, 무인정찰기로 적 피해 상황을 실시간에 판단한 뒤 연속 공격했다. 반면 이라크군은 자신의 피해를 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 2·3차 공격을 받아 전투 의지를 상실하고 항복했다. 우리 군도 이런 방식으로 최소의 손실로 신속하게 전투를 끝낸다는 것이다.

육군을 이를 위해 올 1월 교육사에 드론봇군사연구센터를 설치한 데 이어 지난달엔 지상작전사령부에 드론봇전투단을 창설했다. 또한 민간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드론봇 챌린지대회’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국방부 산하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국)가 2004년부터 ‘챌린지(challenge)’란 명칭으로 드론봇 경진대회를 해오고 있다. 이 가운데 그랜드챌린지 대회는 모하비사막에서 자율주행으로 240㎞를 이동하는 시합이다. 2004년 첫 회에는 목표를 달성한 팀이 없었으나 이듬해 2차 시합에선 스탠퍼드대학팀이 우승했다. 2007년 실시한 어번(도시)챌린지대회는 도심을 모방한 경기장에서 96㎞를 자율 주행해 6시간 안에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것인데 카네기멜런대학팀이 승자였다. 로보틱스 챌린지대회(2012∼15)에선 한국 KAIST의 ‘휴보’로봇이 우승했다. 우승팀에게는 2백만 달러의 상금도 주어지고 대회에 따라 예산도 지원한다.

드론봇은 세계적 추세다. 미국을 포함한 이스라엘·영국·프랑스와 중국까지도 드론봇 전투체계 개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이 가장 앞섰다. 기술과 재원에서 최고여서다. 미 육군은 미래전투체계(FCS: Future Combat System)를 추진했으나 기술적 한계로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그런 과정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기술이 출현했다. 그래서 자율 주행과 비행이 가능한 로봇과 드론(무인기)이 인간 전투병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전투체계를 개발 중이다. 일반 자율주행 차량은 평탄한 도로에서만 움직이면 되지만 전투로봇은 도로가 없는 험한 지형에서도 이동이 가능해야 하고, 피아 구분과 적의 사이버 공격에도 견뎌내야 한다. 전투로봇이 사이버 해킹을 당하면 갑자기 아군을 향해 무기를 발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최첨단 기술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드론봇 전투체계 기초개발에만 125억 달러(14조 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지난해 42억 달러(4조7500억 원)를 썼다.

우리 육군의 계획은 거창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형편없다. 내년 예산으로 겨우 123억 원이 반영됐을 뿐이다. 5년간의 국방 중기예산에 1조3000억 원을 상정했지만, 실제 예산으로 책정될지는 미지수다. 교육사 관계자는 드론봇 전투체계를 개발해 모든 사단에 배치하려면 17조 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한 비리 방지에 맞춰진 비효율적인 현재의 방위사업법은 드론봇 사업화에 오히려 장애물이다. 그래서 진도가 늦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드론과 로봇 기술 분야에서 한국 수준이 세계 7∼8위인 점은 다행이다. 남북한 사이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것도 문제다. 전방의 모든 사단에 드론(무인기)을 배치해야 하는데 남북이 전방에서 무인기를 띄우지 않기로 한 점이다. 육군 관계자는 “그렇더라도 드론봇 전투체계를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이러한 전투체계를 추진하지 않으면 조만간 주변국에 뒤처지게 된다는 지적에서다. 임진왜란 때 조총을 가진 왜군을 활로 대적하던 조선군이 대패한 것과 같은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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