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4월, 말콤 맥린(Malcolm McLean)이라는 미국 운송업자가 만든 첫 컨테이너선 ‘아이디얼 엑스(Ideal X)’가 뉴저지를 떠나 텍사스로 향했다. 길이가 9m인 컨테이너 58개를 싣고 있었다. 갑판에 실린 컨테이너들이 파도에 씻겨나가거나 낡은 배가 대서양의 폭풍우에 가라앉을까 우려했다. 배는 무사히 항해를 마쳤다.
하역이 간단해 배가 부두에 머무르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당시 맥린의 계산에 따르면 아이디얼엑스에 선적하는 데에는 톤당 0.16달러가 들었다. 비슷한 중형 선박의 선적 비용은 5.86달러다. 해운의 역사를 다시 쓰는 순간이었다.
UDC2018 결산…⑧토큰의 시대가 온다
맥린이 컨테이너를 발명한 것은 아니다. 컨테이너 자체는 1800년대부터 있었다. 다만, 그 크기가 모두 달랐다. 그가 이룩한 건 표준화다. 공무원들 쫓아다니며 회사마다, 국가마다 다른 표준을 고치려고 했다. 괜한 일 만든다며 공무원들은 그를 만나기 질색했다. 부두 노동자들은 컨테이너가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며 도입을 강력히 반대했다.
컨테이너가 일반화된 것은 1960년대 벌어진 베트남 전쟁 덕이다. 군수품을 빨리 실어야 하는데 맥린의 하역 작업이 월등했다. 미국 정부는 맥린의 컨테이너에 표준을 맞출 것을 요구했다. 맥린 또한 특허를 포기하고 컨테이너의 보급에 주력했다.
물류비용의 인하는 세계 경제를 하나로 묶었다. 자유무역협정(FTA)보다 훨씬 더 큰 발명이다. 세계 화물 교역의 90% 이상이 컨테이너로 이뤄진다.
포브스는 2007년 맥린을 ‘20세기 후반 세계를 바꾼 인물 15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됐다. 그와 함께 선정된 사람이 월드와이드웹(www)의 아버지 팀 버너스 리, 냉전 종식에 기여한 전 소련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이다.
지난 9월 14일 제주에서 열린 ‘업비트 개발자 콘퍼런스(UDC) 2018‘ 연사로 나선 홍페이 다 네오(NEO) 설립자는 컨테이너 이야기를 꺼냈다.
“컨테이너를 통해 선적 시간이 단축됐고, 자동화가 이뤄졌으며, 물류 비용은 놀랄 만큼 저렴해 졌다. 하지만, 1950년대 도입 당시엔 노조도, 다른 기업들도, 규제 당국도 싫어했다. 지금의 블록체인 산업과 비슷해 보이지 않나.”
그는 블록체인 기술로 생겨난 토큰(token)을 ’사업과 금융의 컨테이너‘로 비유했다. 물리적인 컨테이너보다 더 강력한 컨테이너인 토큰을 통해 ‘스마트 경제’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홍페이 다 대표가 구상하는 스마트 경제는 모든 자산이 디지털화 하는 세상이다. 모든 것을 코드로 관리할 수 있다. 탈중앙화와 분산화로 사람들이 정부보다 기술과 코드를 더 신뢰힌다. 새로운 체제이자 정부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는 ‘블록체인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어떤 이는 소프트웨어(SW)라고 한다. 하지만, SW 이상이다. 앱을 개발하고 탑재하니 운용체계(OS)라고 하지만 OS 이상이다. 어떤 이는 인터넷처럼 프로토콜과 네트워크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인터넷 이상이다. 블록체인은 가치를 전달하는 가치의 인터넷이지만 가치의 인터넷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비트코인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게 2012년이라고 말한 그는 “블록체인은 새로운 제도적 도구”라며 “이를 통해 새로운 경제, 즉 스마트 경제로 진입한다”고 예상했다. 스마트 경제의 컨테이너는 토큰이다. 모든 자산 혹은 가치는 토큰이라는 컨테이너에 담을 수 있다. 주식ㆍ채권ㆍ옵션ㆍ부동산 등 모든 것의 토큰화(tokenization)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시간적 물리적 한계를 내포한 자산은 24시간 365일, 국경을 넘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홍페이 다가 2014년 만든 네오가 바로 개방형 네트워크이자 스마트 경제 프로젝트다. 디지털 자산을 등록ㆍ전송ㆍ교환할 수 있는 블록체인이다. 스마트 경제로 구현된 미래를 상상해 보면 지금 암호화폐 가격의 버블 논란은 우스운 얘기다.
그는 “애플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돌파했지만, 암호화폐 시장 전체 규모라고 해 봐야 2200억 달러도 안 된다”며 “5~6년이면 애플ㆍ아마존ㆍ마이크로소프트(MS)ㆍ구글ㆍ페이스북 등 다른 정보기술(IT) 기업보다 블록체인 기술, 혹은 산업이 인류에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큰(Token)의 일반적 의미는 ‘구체적인 혹은 사전에 약속된 재화 및 서비스에 대한 권리를 나타내는 증표’다. 일종의 ‘채권-채무 증표’다. 토큰 발행자는 토큰 구매자에게 사전에 약속된 재화 및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예전에 사용됐던 버스 토큰이나 카지노 칩이 그 예다. 카지노 칩을 보유한 사람만이 카지노에서 제공하는 모든 종류의 게임에 참여할 자격을 갖는다. 또, 물리적인 방법으로 소유권이 이전되기 때문에 ‘물리적 토큰(Physical Token)’으로도 불린다.
물리적 토큰에 디지털 수단이 더해지면 ‘디지털 토큰(Digital Token)’이 된다. 기능이 제한적인 디지털 티켓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영화 관람만 가능한 모바일 영화 티켓이 디지털 토큰이다.
디지털 토큰에 교환ㆍ매매의 기능이 추가되면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ncy)’다. 디지털 토큰은 사전에 약속된 재화 및 서비스로만 교환되는 반면, 디지털 화폐는 상대적으로 넓은 범위의 교환매매 기능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사가 제공하는 온라인 바우처는 여러 곳에서 쓸 수 있다. 오프라인 마켓을 통해 법정화폐와 교환할 수도 있다. 온라인 상품권 역시 대표적인 디지털 화폐다.
이더리움과 같은 블록체인 플랫폼 위에서 디지털 토큰이 생성되면,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 토큰(Decentralized Application Token, DApp Token)이 된다. 그리고 디앱 토큰은 다시 ‘유틸리티 토큰(Utility Token)’과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으로 구분된다.
유틸리티 토큰은 디앱이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와 네트워크에 접근할 권한을 부여하는 토큰이다. 유틸리티 토큰이 있다면 이걸 내고 토큰 발행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반면, 증권형 토큰은 주식과 마찬가지로 디앱에 대한 소유권을 의미한다. 해당 디앱의 수익을 배당 형태로 분배받는다. 형태는 토큰이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주식과 비슷한데 유통이 주식보다 편리하다.
시장의 대부분은 유틸리티 토큰이다. 지난 7월 기준으로 413개의 ICO 프로젝트 가운데 337개(82%) 프로젝트가 유틸리티 토큰을 발행했다. 증권형 토큰은 14개(3%) 프로젝트에 그쳤다.
유틸리티 토큰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규제망을 벗어나기 쉬워서다. 스위스 금융시장감독기구인 핀마(FINMA)에서는 토큰을 유형별로 나눠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핀마는 증권형 토큰을 증권으로 간주해 금융시장법을 따라야 한다고 규정했다. 토큰을 발행할 때 증권신고서를 발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반면, 유틸리티 토큰은 규제의 울타리 밖에 있다.
미국 역시 증권형 토큰에 대해서는 증권법을 적용한다. 증권형 토큰으로 분류되면,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해야 한다. 또한, 고객 신분을 익명처리 할 수 없기 때문에 정보공개(KYC)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미국에서는 증권형 토큰을 ‘하위테스트(Howey Test)’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하위테스트란 하위컴퍼니가 오렌지 수익을 농장 임대인들에게 나눠 줄 때 오렌지가 증권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했던 사건에서 유래했다(이 판례는 투자자가 오렌지 재배의 소득을 보장받았을 경우, 오렌지는 결국 증권의 성격을 가진다고 결론 내렸다).
하위테스트의 기준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1. 돈을 투자했다.
2. 투자한 돈으로부터 수익을 기대한다.
3. 투자한 돈이 공통의 목표를 가진 회사들에 있다.
4. 투자자가 아닌 3자나 회사 관련인들로 부터 수익이 발생한다.
아무리 유틸리티 토큰이라고 주장해도 위의 조건이 충족된다면 실질우선원칙(Substance over form)에 따라 증권형 토큰으로 간주한다.
규제라는 제약에도, 업계에서는 증권형 토큰이 미래에 더 많이 쓰일 것으로 전망한다. 증권형 토큰은 자산을 디지털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모든 자산을 토큰으로 바꾸는 토큰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부동산을 토큰화 하면, 토큰 소지자들은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을 때 그 수익을 누릴 수 있다. 전시를 할 수 있는 미술품이라면 미술품 가격이 상승했을 때뿐 아니라, 전시회 대여를 통해 올린 수익도 받을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증권형 토큰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스마트 계약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자동으로 처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회사 운영에 관한 투표, 지분에 따른 수익 배당 날짜와 액수를 스마트 계약을 통해 자동으로, 투명하게 처리할 수 있다.
패트릭 번 오버스탁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5년 내 모든 주식들이 증권형 토큰’으로 바뀌며 그 규모 역시 현 주식시장의 수백 배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밥 그레이펠드 전 나스닥 CEO도 모든 주식과 채권이 5년 내에 증권형 토큰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블록체인 기반 투자은행 플랫폼인 핀헤이븐의 김도형 대표는 지난 9월 13일 UDC2018 강연자로 나서 증권형 토큰의 유용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특히 글로벌 시장 진출, 다양한 비용 감소 효과, 높은 자산 유동성, 빠른 정산, 안전하고 변경 불가능한 데이터 등 블록체인 기술력이 자본시장에서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이 글은 9월 13~14일 제주도에 열렸던 ‘업비트 개발자 콘퍼런스(UDC) 2018’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총 10개의 시리즈 글이 업데이트 됩니다. 전체 보고서는 https://www.upbit.com/service_center/press?id=596 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UDC2018 강연 동영상 및 발표자료는 ‘https://udc.upbit.com/2018’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리즈는 업비트의 후원으로 제작됐습니다.
①블록체인, 이제는 서비스다(feat. 개발자)
②거래소, 도박장에서 블록체인 혁신의 심장으로
③성공한 플랫폼은 보이지 않는다: 확장성을 해결하라
④‘신뢰’의 블록체인을 지켜라: 보안과 보호
⑤쇼핑몰 뒤엔 카페24가 있다: Platform for DApp
⑥살아남는 DApp의 조건…블록체인 정신을 구현하라
⑦블록체인 경제 성장의 필수 요건, 스테이블 코인
⑧The Rise of Tokenization
⑨DApp들이여, 루니버스에 올라타라
⑩블록체인의 고릴라를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