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 명절 설날|김재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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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음력설이 며칠 남지 않은 요즈음 신문을 보니 민속의 날을 설날로 바꾸고 연휴를 실시한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민속의 날이라는 낯설고 모호한 명칭으로 정해져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아리송했는데 이제야 제 이름을 찾은 것 같아 우선 반갑다. 또 아이들에게도 설날에 대한 풍습이나 그날의 의미를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예전의 설날 모습을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저 조상에 제사 지내고 하루 쉬는 날 정도로 여겨지는 것 같아 무엇인가 잘못된 느낌이다.
내 기억 속의 어린 시절 설날은 1년 중 가장 설레고 뜻깊은 명절이었다.
섣달 그믐께만 되면 온 동네는 설 준비로 분주해 지는데 여인들은 광목을 마름질해 새 옷을 깁고, 남정네들은 안반과 떡메를 지고 집집마다 돌며 산골짜기가 쩡쩡 울리도록 흰떡을 쳤다.
또 엄마와 아주머니들은 떡살에 참기름을 발라가며 떡을 빚어내고, 할머니는 햇살 바른 뒤뜰에서 약과를 구워내는 등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광목 두루마기 자락을 펄럭이며 걸으시는 아버지를 따라 설빔으로 받은 고무신을 신고 큰댁으로 설쇠러 가던 고갯마루의 그 설렘, 정초 내내 세배 손님으로 북적거리던 사랑방, 큰 마당에서 떠들썩하게 벌어지던 윷판, 남동생은 손마디가 패핏물이 배어나는 것도 모른채 연날리기하던 기억도 새롭다.
설은 남지의 명절이고 정월 보름은 여인들의 명절이라 정초 손님맞이에 바쁘던 여인들은 보름이 되면 버선발이 닳도록 널을 뛰고, 찰떡을 굽고, 눈덮인 산에 올라 정성껏 달맞이 기원을 했다.
최근 15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이러한 풍습이 성행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서도 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어 아쉽다. 너무 요란하고 비생산적인 것은 삼가야겠지만 나만을 우선하는 이기주의적 현실에서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이웃과 함께 어울리던 아름다운 우리의 풍습을 찾아내 다시 찾은 설날의 참된 의미를 의식시키고 보급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인천시 만수동 165의 7 신한아파트 4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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