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무력감, 병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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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호 32면

『당신이 옳다』 

저자: 정혜신 출판사: 해냄 가격: 1만 5800원

저자: 정혜신 출판사: 해냄 가격: 1만 5800원

저자는 정신과 의사 정혜신이다. 십수 년 동안 ‘거리의 치유자’로 사회적 재난 현장부터 평범한 이의 일상의 순간까지 고루 누볐다. 그런 그가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라며 낸 책이다. “굳이 전문가를 찾아가지 않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라며 숱하게 들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 책을 썼다고도 했다. 집밥 같은 치유를 고민하며 ‘적정심리학’이라는 표현을 곁들였다. 아프리카 어느 마을에 물 긷는 아이들을 위해 공 모양의 물통을 개발한 적정기술의 사례를 들며, 심리학도 적정한 심리학이 필요하다고 선언하면서다. 프롤로그가 자못 비장하다.

“이제 나는 삶의 고통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의학적 관점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다. 고통스런 사람의 속마음을 보듬고 건강한 성찰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질병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진정한 전문가적 시선과 태도다. 그런 토대 위에서 우리 모두가 자기 스스로 돕고 가족이나 이웃도 직접 도울 수 있는 적정한 심리학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책에는 정신분석학 관련 이론은 없다. 대신 저자가 마주한 현장이 있다. 그곳에서 나온 육성이 생생하다. 사례 하나를 옮기자면 이렇다.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던 곳에서 서명대 집기를 부수고 유가족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한 노인에게 저자는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왜 소란을 피웠는지 통상 물을 법도 한데 다른 접근법이다. 그런데 노인을 향한 이 의외의 질문 덕에 대화가 시작됐다. 거리에 버려진 부서진 장롱 같은 노인의 삶이 펼쳐졌고, 저자는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한참 만에 노인이 불쑥 말했다. “내가 아까 그 아이 엄마들한테 욕한 건 좀 부끄럽지”라며 미안해했다고 한다. 만약 노인에게 다짜고짜 사과하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저자는 “소동에 관한 얘기 그 자체만으로는 소동에 관한 진짜 얘기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진짜 얘기를 하려면 노인에 대한 이야기, 자기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기 존재가 집중 받고 주목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하고, 그 안정감 속에서야 비로소 사람은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책의 제목대로, “당신이 옳다”고 말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무조건적인 찬동이 아니라,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는 수용의 의미다. 저자는 “사람은 괜히 집을 나가지 않으며 괜히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며 “나는 언제든 우선적으로 그 마음을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이후의 질문도 중요하다. “네 마음이 어떠냐”고 상대에게 집중하고 물어주는 것이 저자가 강조하는 ‘심리적 CPR’이다.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상담기가 담겨 있다. 그들과 저자가 나누었던 이야기와 편지를 읽는 것만으로 마음이 조금 데워질 듯 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처가 있고 그러하기에 공감할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충조평판(충고ㆍ조언ㆍ평가ㆍ판단)’은 접고, 묻자.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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