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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45만원, 이스타 48만원···저가항공의 배신,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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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올 크리스마스 때 일본 여행을 준비 중인 김진영(34)씨는 저비용 항공사(LCC)의 항공권 가격이 대형 항공사(FSC,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싼 경우가 많은 것을 발견했다. 김씨는 “짐 부치는 비용과 식대 등을 따로 받으며, 마일리지도 없는 LCC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정상적인 가격구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항공사와 가격 역전 왜 #해외여행객 늘며 탑승률 90%대 #싸게 안 팔아도 좌석 거뜬히 채워 #성탄절 시즌 인천~나리타 왕복권 #대한항공 45만원, 이스타 48만원 #“서비스 덜 하면서 가격은 비싸 #신규 항공사 늘려 경쟁하게 해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실제 최저가 항공권 검색 사이트인 스카이스캐너를 통해 올 12월 21~25일의 인천~일본 나리타 왕복 항공권 가격을 검색(10월 16일 기준)한 결과 인천~나리타 구간을 운항하는 국내 7개 항공사 중 이스타항공이 48만1500원으로 가장 비쌌다. 이어 에어서울·아시아나항공·진에어·대한항공 순으로 가격이 비쌌다. 여기에 수하물 20㎏을 싣고 기내식을 먹는다면 LCC의 항공료는 이보다 더 비싸진다.

성수기가 아닌 11월 둘째 주말(16~18일)의 인천~나리타 항공권을 검색해도 진에어가 34만7000원으로 가장 비쌌고, 대한항공(33만2700원)과 티웨이항공(32만8400원)이 비슷했다.

LCC의 사업 모델은 비용 절감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항공권을 공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LCC와 대형 항공사의 항공권 가격이 엇비슷한 경우가 나타나는 건 공급보다 수요가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해외 항공여객 수는 2015년 6143만 명에서 지난해 7696만 명 등으로 계속 늘고 있다. 이렇게 여행객이 늘자 동남아 노선을 주로 운항하는 국내 LCC들은 ‘자리가 없어 못 팔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실제 인천공항공사가 여행 비수기로 분류되는 올 3월의 항공사별·노선별 탑승률(비행기 좌석 수 대비 실제 탑승한 승객 비율)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인천~나리타의 진에어 탑승률이 95.2%고, 인천~베트남 다낭의 제주항공 탑승률은 96.2%다. 전체 평균 탑승률도 90%가량이다. LCC 입장에서는 손님이 줄을 잇고 있는 상황에서 싸게 비행기표를 팔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이런 ‘저비용 고수익’ 기조가 이어지면서 국내 LCC들의 실적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티웨이항공의 올 1분기 영업이익률은 22.8%로 지난해 동기(11.6%)보다 11.2%포인트나 늘었다. 또 진에어(19%)·제주항공(15%)도 대한항공(5.9%)·아시아나(3.6%)를 훨씬 웃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LCC를 이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좁아 제대로 된 서비스도 못 받으면서 비싼 비용을 치러 온 셈”이라며 “신규 LCC 진입을 허용해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이런 상황의 개선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는 6개 LCC가 영업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신규 LCC들은 항공사업 인허가권자인 국토교통부의 문을 수차례 두드렸다. 최근 국토부에 항공운송산업 면허신청을 한 업체만도 플라이양양·에어로케이·에어프레미아 등 3개 업체다. 이 중 플라이양양은 두 번 실패한 후 이번이 삼수째고, 에어로케이는 재수다.

국토부는 그동안 조종사 및 정비사 부족 등에 따른 안전 문제가 우려된다며 신규 LCC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허희영 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안전 문제는 심사 2단계인 운항허가 심사 때 철저하게 봐야 할 사항인데 국토부는 1단계인 사업면허 심사 단계에서부터 이를 문제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안에도 국토부의 경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항공서비스의 가격 하락과 품질 향상 등 국내 항공 소비자들의 편익 증대를 위해 항공시장 진입 규제완화 등의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국토부도 변화의 조짐이 있다. 국토부는  항공운송사업자 면허 기준 중 신규 사업자에게 불합리한 장벽이라 여겨지던 ‘과당경쟁 우려 기준’을 삭제하기로 했다고 18일 발표했다.

하지만 신규 LCC가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소비자에게 큰 혜택이 돌아가기 힘들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양성진 제주항공 전무는 “현재 인천공항과 제주공항의 슬롯(비행기 이착륙 시간)이 포화 상태여서 더는 비행기를 띄우기 힘들 정도”라며 “활주로 증설 등 추가로 비행기를 운항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 후 신규 LCC를 진입시키는 게 시장에 충격을 덜 주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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