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의 역사를 모았죠" 창간독자 김용섭씨 중앙일보에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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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동안 길러온 자식이 품을 떠나 독립하는 기분입니다."

1965년 9월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한 부도 빠짐없이 모아온 중앙일보를 창간기념일에 앞서 21일 본사에 기증한 김용섭(金龍燮.64.무역업)씨.

그는 "중장년기에 기쁨과 슬픔, 고통과 보람, 좌절과 성취가 오롯이 배어 있는 신문이어서 더욱 감회가 깊다"고 말했다.

金씨는 대학 졸업 무렵 창간된 중앙일보의 파격적인 참신함과 특히 '분수대'를 읽는 재미에 끌려 고정 독자가 됐다고 했다.

"결혼한 뒤 전세방을 전전하면서도 중앙일보 묶음은 한 장이라도 찢어질세라 애지중지했죠."

신문이 한 부라도 빠질까봐 이사할 때면 미리 보급소를 찾아가 구독신청을 했고, 배달소년을 집까지 직접 데려와 길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비가 와서 신문이 젖으면 다리미로 말려 펴고, 그래도 안 되면 신문을 들고 보급소에 찾아가 교환했다. 보급소에 여분이 없으면 본사를 방문해 구했다.

金씨의 가족들도 중앙일보 사랑에 동참했다. 아들 현준(賢俊.35.외식업)씨는 "학교에 가져갈 폐품은 시장에서 다른 신문을 사서 가져갔고, 키우던 고양이도 신문을 자꾸 건드린다며 남에게 줬다"고 기억했다.

그는 "대학원 논문 자료로 신문을 스크랩하려 했더니 아버지가 펄쩍 뛰며 들춰보지도 못하게 하셨다"고 말했다.

신문이 다락에 쌓이자 金씨는 70년대 중반부터 두달치를 한 권씩으로 제본했다. 그는 "날짜, 페이지, 보관 상태를 점검해 제본소에 넘기면서 혹시나 구겨진 부분이 있을까봐 다리미까지 사주며 깨끗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80년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집을 지을 때는 거실의 벽면에 높이 3.5m, 폭 5m의 장을 맞춰 제본된 중앙일보를 연도별로 정리했다.

"국회나 대학 도서관에서 기증 요청이 오기도 했지만 나 자신의 숨결과 시대의 생생한 역사가 담겨 있어 보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거실 마루가 신문보관장의 무게를 못이겨 일부 내려앉았다. 게다가 최근 서울 잠실의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고심 끝에 기증을 결심했다.

金씨는 "개인 차원에서 관리하기에 벅차 기증했지만, 신문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중앙일보를 모으고 있다"는 그는 "창간독자로서 앞으로도 영원한 중앙일보 팬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金씨가 기증한 2백20여권의 중앙일보 제본은 1t 트럭 2대에 실려 본사 안산공장 자료관으로 옮겨졌다. 중앙일보는 22일 창간 38주년 기념식에서 창간호 1면을 손바닥 크기의 순금(15돈)으로 제작한 기념패를 金씨에게 전달한다.

원낙연 기자<yanni@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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