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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박성현 가는 곳에 여성팬 몰린다 … 필드의 걸크러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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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박성현의 여성 팬은 40대가 가장 많고 골드미스도 절반 가량이다. 팬들은 전통적인 여성 이미지를 깨는 박성현에 열광한다. [뉴스1]

박성현의 여성 팬은 40대가 가장 많고 골드미스도 절반 가량이다. 팬들은 전통적인 여성 이미지를 깨는 박성현에 열광한다. [뉴스1]

전인지(24)가 버디를 하면 남성 팬들이 소리를 질렀고, 박성현(25)이 버디를 하면 여성 팬들이 환호했다. 14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장 오션 코스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다. 이들의 팬 숫자는 비슷해 보였지만 고음의 여성의 목소리가 더 귀에 꽂혔다.

호쾌한 드라이브샷에 여성팬 열광 #"막힌 가슴 뻥 뚫리는 것 같다” #팬클럽 75% 여성 … 후원자 자청 #미국·프랑스 등 해외 원정 응원도

골프장 갤러리는 남성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박성현이 뜨면 여성 갤러리 비중이 확 늘어난다. 대회장에서 만난 박성현의 공식 팬클럽 ‘남달라’의 매니저 임 모(53·여) 씨는 “네이버 공식 팬클럽 회원 7900명 중 여성이 75%, 남성은 25% 정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기 스타 전인지의 팬들 대부분이 남성인 것과 확연한 대조가 된다.

짧은 머리에, 바지를 입고, 군대 유격 조교처럼 모자를 푹 눌러 쓰는 박성현에게 매력을 느끼는 여성 팬들이 많다. 경기장에서 만난 한 40대 여성은 “박성현이라는 여성에게 반한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박성현의 에이전트사인 세마 마케팅의 홍미영 상무는 “여고 시절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니는 친구에게 다른 아이들이 선물을 주고는 했었다. 여성이 다른 여성을 존경하고 우상화하기도 하는 일종의 걸크러시 현상”이라고 봤다. 걸크러시는 호혜적이기보다는 연예인이나 스타를 대하는 것처럼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 박성현처럼 보이시하고 중성적이며 강한 캐릭터의 여성이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전에도 한국 여자 골프에는 최나연·김효주 등 소년 같은 이미지의 스타가 있었다. 회사원 이 모(47·여) 씨는 “중성적 이미지는 비슷하지만, 박성현은 남자도 이길 것처럼 강렬하다. 승부에 강하고, 해내고야 마는 이미지가 멋지다”고 말했다.

강렬한 이미지라면 왜 남자 선수가 아니라 남성적 이미지의 여자 선수를 좋아할까. 40대 팬은 “남자 선수를 어릴 때의 심정으로 좋아하기엔 지금 내 나이가 많지 않으냐”고 말했다. 또 다른 팬은 “남자 선수 중에 그 정도의 매력적인 선수를 보지 못했다. 박성현이라는 남다르고 특출난 선수가 나왔기 때문에 골프 팬이 된 것”이라고 했다.

박성현의 팬클럽 ‘남달라’ 는 상징색과 응원 구호 등이 아이돌 팬클럽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회원들의 연령대는 어리지는 않다. 임 매니저는 “40대가 절반 정도이며 50대, 30대 순”이라고 했다. 과거 오빠 부대를 일컬었던 이른바 ‘빠순이’가 아니라 패트론(후원자)과 비슷한 마인드다.

미혼 여성의 비중이 높다는 점도 특이하다. 임 매니저는 “회원 중 절반 정도가 미혼일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인터뷰한 박성현의 팬 여성 5명 중 3명이 미혼이었다. 이른바 골드미스가 골프장에서 팬덤을 발휘하는 것이다. 한 회원은 “미혼 회원들은 대부분 골프를 친다. 은행이나 공사 등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거나 전문직을 가진, 경제력과 시간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40대의 미혼 여성 회원은 “골프를 치다보면 샷 거리에 짜증이 나는데 박성현의 장타를 보면 속이 시원해진다. 공격적으로 경기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중앙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성동규 교수는 “여성들은 골프장은 물론 회사 등 사회생활을 할 때도 유리천장을 만나게 되는데 박성현을 보면서 나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자신의 노력으로 최고 자리에 올라선 여성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팬클럽 매니저 임 씨는 “올해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박성현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싱가포르와 미국(US오픈), 프랑스(에비앙 챔피언십)에도 갔다. 휴가를 박성현을 위해 다 썼다”고 말했다. 박성현 팬클럽 회원들은 해외에서 열리는 메이저 대회엔 10명 정도, 미국의 일반 대회엔 2~3명 정도가 응원을 간다고 귀띔했다. 기자가 만난 박성현의 팬들은 모두 중·고교 시절 연예인들을 쫓아다녀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성공을 위해 모범생으로 살아온 골드미스 혹은 주부였다. 서울대 강준호 교수는 “팬덤은 좋아하는 대상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발전한다. 이때 스타와 비교하는 자신은 지금의 나(actual self) 또는 되고 싶은 나(ideal self)가 될 수도 있다. 팬들은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깨는 박성현 선수가 ‘지금의 나’ 또는 ‘되고 싶은 나’의 이미지와 겹치기 때문에 특히 애착을 가지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일부 팬들은 과도한 응원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13일 3라운드 경기 도중엔 한 여성 갤러리가 갑자기 이동 중인 박성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박성현은 그 홀에서 더블보기를 했다. 박성현은 “경기에 방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선수 보호 차원에서라도 자제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성현 팬클럽 관계자는 “우리 회원이 아니다. 우리는 박성현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도울 뿐. 팬클럽은 경기를 방해한 사람을 규탄한다”라고 말했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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