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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까르푸 철수가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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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다국적 유통업체들의 해외 진출에 있어 그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자사 경쟁력의 표준화와 현지시장의 적응 사이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월마트는 국내시장에서 미국시장에서와 같은 할인점 개념과 운영방법을 고집했다. 국제적 표준화에 보다 중점을 둔 것이다. 이에 비해 까르푸는 우리나라 소비자의 정서에 부응하기 위해 좋지 않은 상관습까지도 답습하는 지나친 현지적응화를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월마트는 자사의 강점을 국내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그리고 분위기와 연결시키는 데 실패했다. 까르푸 역시 국내의 유통관습과 소비자의 정서에 잘못 적응해 자사의 이미지와 강점을 살리지 못했다. 결국 국내 소비자 관점에서 철저하게 지역밀착적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토종브랜드인 이마트와, 외국계이면서도 현지 적응에 성공한 삼성테스코의 홈플러스라는 경쟁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영국계인 테스코의 해외 진출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국은 물론 동남아에서도 현지 소비자들의 정서와 욕구에 부응해 본래의 강점인 신선식품 관리 및 마케팅 능력을 유연하게 접목시키고 있다. 현지기업과의 합작 및 브랜드 연계, 그리고 새로운 업태의 개발 등 다양한 현지밀착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비록 월마트와 까르푸도 한국에서 고전했지만 중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상황은 딴판이다. 까르푸는 외국계 할인점 가운데 중국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 까르푸는 주요 대도시를 중심으로 좋은 입지를 선점하고, 중국 소비자들에게 적합한 매장 분위기 속에서 구미에 맞는 다양한 상품을 제공해 소비자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월마트도 중국시장을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간주하고 지속적인 매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국제적 표준화를 바탕으로 현지 적응화를 서서히 꾀함으로써 매장 확장 면에서는 까르푸에 뒤지고 있다.

따라서 국내 유통업계가 월마트와 까르푸를 제압했다고 자만할 게 아니다. 이미 국내시장의 포화로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 1위 할인점인 이마트는 중국시장에서 현재 7개의 점포를 개설해 중국 내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 반면 까르푸는 70개의 점포, 월마트도 56개 점포를 개설해 이마트보다 훨씬 앞서 있다. 결국 이마트가 국내에서 월마트와 까르푸를 이겼다고 하더라도 세계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에 불과한 셈이다. 현지적응 노력과 함께 글로벌 차원에서의 상품구매력과 시스템 구축을 게을리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통시장 개방 당시 해외의 거대 업체들이 몰려오면 국내 시장은 쑥대밭이 될 것이라고 걱정들이 많았다. 그러나 까르푸와 월마트의 철수를 보면, 기우로 판명났다. 현재 활발하게 추진 중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본다. 이미 한국 소비자들은 까다로워졌다.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면 세계시장에서도 통하는 시대다. 역시 중요한 것은 경쟁력이다. 무엇보다 철저한 현지 밀착적 마케팅을 개발하고 현지소비자들에게 차별적인 가치를 확실히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 유통분야뿐만 아니라 농업.어업.제조업 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면서 미리 준비하면 어떤 FTA가 체결돼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까르푸와 월마트가 한국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되새겨야 할 교훈이다.

오세조 연세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