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정지영(영화감독) 『남부군』을 영화로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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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영화「남부군」은 그동안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식의 반공영화도 아니고, 공산주의 찬양영화는 더더욱 아닙니다. 오로지 우리 민족의 비극적 현대사의 수레바퀴 밑에 깔려 희생된 빨치산의 모습을 올바른 시각에서 재조명하려는 것입니다.』
새해들어 이태씨(본명 이우태)의 수기 『남부군』의 영화화 작업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정지영감독(43)은 이 작품에 감독으로서 한판 승부를 걸고 있다.
비단 제작비가 5억원이상이나 드는 대작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화덕분에 그가 영화예술인으로 늘 갈구해 왔던 소재를 드디어 만들 수 있게 됐다는 기쁨과 이 작품에 거는 의욕이 남달리 크기 때문이다.
『영화「남부군」은 제 필생의 대표작으로 만들 것입니다. 작품수준에서든, 흥행에서든 꼭 성공해 올해야말로 감독으로서 제2의 길을 열 작정입니다.』
정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지난해 말 영화사 남프러덕션까지 새로 차렸다. 영화사 이름도 『남부군』에서 「남」자를 따왔다
영화사 설립자금과 제작비는 그의 뜻을 이해한 선·후배 동료 10여명이 함께 마련해 주었다. 모두 영화인들도 아닌데 『남부군』이야말로 이 시대에 꼭 영화화해야 할 작품이라고 뜻을 모았다.
정감독은 지난해 말 원작자 이태씨를 만나 영화화 허락을 받아냈다. 판권료도 충분히 지불치 못했지만 그의 뜻을 이해한 이씨가 다른 영화사를 제치고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시나리오는 신인감독이자 시나리오작가인 장선우씨가 맡아 최근 완성했다. 그 자신은 이 작품의 영화화에 꿈이 있었지만 정감독에게 양보하고 원작에 나오는 지리산·회문산 산길을 모두 돌아본 후 시나리오를 썼다.
영화『남부군』은 오는 2월초 지리산에서 겨울장면부터 촬영에 들어가 올 가을 완성될 예정이다. 주인공은 안성기씨가 맡는다.
『영화「남부군」은 원작의 단순한 재현이나 영상화가 아닙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빨치산이 된 한 진보적 지식인이 겪는 처절한 갈등과 회의, 희망과 좌절 등 내면적 세계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정감독은 이를 위해 원작속에 나오는 숱한 에피소드를 주제에 따라 5, 6개로 압축해 한 빨치산의 인간드라마를 깊이 있게 조명할 구상이다.
그는 특히 이 영화에서 철저한 리얼리즘을 추구할 예정이다. 원작자 이태씨 등의 고증을 받아 당시 빨치산의 모습과 투쟁을 사실 그대로 재현한다.
지난 82년『여자는 안개처럼 속삭인다』로 데뷔한 정감독은 그동안 『추억의빛』 『거리의 악사』 『위기의 여자』등을 통해 탄탄한 연출력을 갖춰 왔다.
한동안은 TV에서도 일하며 『베스트셀러 극장』에서 「완장」 「지지배배」등을 발표해 주목받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미국영화 직배반대·민족영화위원회 설립 등 민족영화운동을 지도해 온 「숨은 실세」이기도 하다.
『영화「남부군」이 그동안 왜곡 인식돼 온 빨치산을 올바르게 재조명함으로써 민족동질성을 되찾고 통일의지를 다지는데 한 줌의 기여라도 한다면 더이상 큰보람은 없겠읍니다.』
정감독은 아직 『남부군』을 읽어보지 못한 많은사람들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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