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취재 거부한 홍보수석 "盧대통령과 교감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휴일인 21일 오후 이병완(李炳浣)청와대 홍보수석이 돌연 기자실을 찾았다. 그러면서 최근 권양숙(權良淑)여사의 부동산 미등기 전매 의혹을 지난 19, 20일자 이틀에 걸쳐 1면에 보도한 동아일보를 만지작거리며 집중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디지털 시대에 변사가 나오는 무성영화, 흑백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오더라"고 운을 뗐다. 작심한 듯 동아일보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權여사 미등기 전매 관련 의혹이 5월에 이미 타 신문에 한차례 보도됐음에도 과도한 지면 할애를 했고, 청와대가 자료로 해명했음에도 제대로 보도를 해주지 않았다는 게 분노의 단초였다.

언론계 출신인 李수석은 "기사 요건이 맞는지도 모르겠다"며 "내가 듣기론 당초 이 사건을 취재한 신동아 측에서도 기사 가치가 없다고 했고, 내 정보가 맞는지는 모르나 동아일보 내부 사람이 자기도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李수석은 "해도 해도 너무한다"면서 "기사 밸류(가치)에 맞는 보도를 해야 하는 게 상식 아니냐"고 불만을 삭이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 떨어뜨리기에 실패한 적개감의 발로' '경영진의 뿌리깊은 저주' 등의 섬뜩한 단어도 등장했다.

이어 그는 "동아일보의 기준과 사시(社是)가 그러하다면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언론 탄압 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한 만큼 그렇게 하라"고 한 뒤 "합리적이고 공정한 잣대의 협력을 바라지만 본질적 적대감을 갖고 악의를 그대로 표출하면 법적.제도적 대응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李수석은 이날 발언이 노무현 대통령과의 교감에서 나온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니다"며 "홍보수석은 중요한 자리인 만큼 내 스스로의 판단을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기자가 몇가지 질문을 하자 李수석은 "귀사의 어떤 질문에도 이젠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의 동아일보에 대한 취재 거부 방침에 대해 언론학자들은 특정 언론을 적으로 간주하는 듯한 부적절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특히 사회적 흉기 운운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서 도를 넘은 수준이라는 게 학자들의 평가다.

상대의 악의성을 비판하면서 상대를 악의적으로 비판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동아일보가 해명했듯이 타 신문의 보도 내용을 설사 재탕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신문의 독자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 때문에 동아일보 기사의 당사자인 청와대의 홍보수석으로서는 적절한 발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박천일 교수는 "최고 권력자나 주위에 비리 의혹이 있다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 역할인데, 홍보수석이 그것을 일일이 문제삼는 것은 오히려 현 정부의 이미지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최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