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 여론으로 파병문제 못 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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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미국이 한국에 이라크 추가 파병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파병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의 열기가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여론수렴'을 약속하면서 신중론만 펴고 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파병 문제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에 경솔하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중요한 안보.외교 문제를 여론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옳은 방법인가 하는 데 있다.

*** 소신이냐 국민 정서 의존이냐

파병 문제에 대한 여론이 찬반으로 갈라지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면 여론조사 결과 몇 %라도 앞선 편의 주장을 채택해야 하는 것이 '여론수렴'이란 말인가?

그와 반대로 국민 대다수의 의견이 어느 한편으로 기울어졌다고 하자. 그런 경우 정부는 정책의 내용보다 대다수의 의견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가?

우리는 너무 지나치게 '국민정서'를 섬기는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엘리트 교육정책을 논할 때 '국민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에 채택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는데 교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평등을 전제하고 있는데도 평등을 원하는 '국민정서'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면 그런 사회의 교육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론을 추종하는 행동이 가장 큰 위험을 가져다 주는 분야는 바로 안보와 외교 분야다. 왜냐하면 우선 안보와 외교 분야에선 일반 국민이 보통 의식하지 못하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런 사건들의 의미를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보.외교 분야에 속하는 정책이나 행동의 결과는 당장 나타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랜 세월이 흘러간 다음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보와 외교 분야에서는 비밀을 요하는 사항들이 있다.

요사이 사람들은 모든 대외 협상이 철저히 투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비밀협상이 반드시 필요한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정책 결정자가 너무 여론에 의존하게 되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외교 분야에서 뛰어난 공적을 남긴 지도자들, 예를 들면 윈스턴 처칠이나 해리 트루먼 같은 사람들은 모두 여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한 인물이다.

결국 추가 파병 문제는 지도자(Leader)가 지도(Lead)를 해야 문제가 풀릴 수 있다. 그러니까 지도자는 자신의 판단을 밝히고 국민에게 이를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서로의 동기를 존중할 줄 아는 국민이 돼야 한다. 서로 상대방을 '굴종외교'니 '이적행위'니 하는 거친 표현으로 그 동기부터 부정적으로 보는 잘못된 관행은 이제 탈피해야 한다.

추가 파병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결정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자유민주사회의 정당한 절차에 따라 나온 결정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이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 美요청 거절땐 연쇄반응 불가피

추가 파병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측에 물어야 할 사항이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만일 우리 정부가 미국의 파병 요청을 거절했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는가 하는 문제다.

파병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이 한.미관계를 포함해 모든 것이 지금까지 있었던 대로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중대한 오산이 될 수 있다.

미국이 파병을 요청한 이상 앞으로의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파병 요청을 거절한다면 상당한 연쇄반응이 있을 것으로 내다봐야 한다.

파견된 한국군의 철수 요건에 대해서도 사전에 미국 측의 명백한 양해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라크 사태는 끝없는 미궁이 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 정부는 '여론'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능동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김경원 사회과학원장.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