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빈민운동 출신 비서관이 실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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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가격 폭등과의 전면전을 이끄는 주역은 바로 청와대 내 3인의 핵심 관계자다. '부동산 이제 생각을 바꿉시다'라는 청와대 브리핑의 기획시리즈가 그 무기다. 이 시리즈의 방향과 수위 등 콘텐트를 챙기는 것은 정문수 경제보좌관, 김수현 사회정책비서관이 주도하고 있다. 김병준 정책실장은 내용의 감수를 맡거나 기고를 통해 전면에 나서고 있다.

3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인사는 올해 44세의 김 비서관이다. 그는 청와대 부동산 정책의 실무 사령탑인 정문수 보좌관의 기획참모 역할을 맡고 있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호흡을 맞추던 국민경제비서관 시절 '10.29 대책'(2003년)과 지난해 '8.31 대책'의 산파역이었다.

서울대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때부터 난곡 등 산동네를 누비며 도시 빈민운동을 했다. 1985년 사당동 철거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서울지역철거민협의회 정책실장까지 지냈다. 올 2월 청와대 브리핑 기고에서 그는 "내가 사는 아파트의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혈안이 된 나라" "자기 집이 낡아 새로 짓는데, 돈 한 푼 안 내고 오히려 버는 유일한 나라"라고 주장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런 정책 완화의 이익을 그냥 '횡재'로 내버려 두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재건축 이익 환수에 초점을 맞춘 올 '3.30 대책'을 예고한 셈이다. 그는 "부동산 시장이 다시 불안해지면 (8.31 대책 같은 안정대책을) 몇 개라도 더 만들 각오가 돼 있다"고 했다. 또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일본 장기불황이야말로 너무나 가까운 타산지석"이라고 강조했었다. 청와대가 이른바 '버블 세븐' 붕괴 위기론을 전파하는 이론적 뿌리를 알 수 있는 셈이다.

정문수 보좌관은 이정우 전 정책실장으로부터 청와대 내 부동산 정책의 실무 지휘권을 이어받았다. 지난해 8.31 대책 회의는 주로 그의 방에서 열렸다. 그는 "강남 아파트 공급론은 투기수요만 부추길 뿐"이라며 "강남의 투기수요 억제와 양호한 대체 주거지 공급이 대안"이라고 주창해 왔다. 그는 4일 "일본의 경험에서 보듯 이제는 부동산 거품을 걱정할 때가 됐다"며 정부 관계자 중 처음으로 버블론을 공개 언급했다.

두 사람이 실무의 핵심이라면 김병준 실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를 당과 정부에 전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스스로도 기고와 인터뷰를 통해 "헌법보다 바꾸기 어려운 부동산 정책을 만들겠다"며 부동산 정책의 '수호신'을 자임하고 나섰다.

서슬 퍼런 청와대의 첨병 역할이 확대되면서 부처의 자율적 목소리가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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