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은 또 합의 파기, 남쪽은 '조건없는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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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이 남북 합의를 깬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 뻔뻔스러운 적은 없었다. 남북은 시험운행 행사를 위한 분(分)단위 일정을 합의하고 주요 참석자 명단까지 서로 통보했다. 그제는 판문역에 북측 기관차가 등장했고, 철도 관계자들이 궤도 점검을 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예정대로 치를 듯한 제스처를 취하다가 행사 전날 기습적으로 취소를 통보해 온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복선이 깔려 있을 것이다. 남측으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얻어내려는 속셈도 그중 하나라고 본다. 북측이 '시간을 두고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계산은 판단착오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합의를 어긴다면 그나마 대북 지원을 이해하려는 남측 국민의 생각도 돌아선다는 점을 명심하라.

반복되는 북한의 합의 파기는 이 정권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규모 탈북자 입국에 대해 북한이 성을 내면 "그러지 마라"며 '사죄성 유감'을 표명했다. 장관급 회담의 합의 내용을 깨도 불이익이 없다. 오히려 남측은 대통령이 나서 '조건 없는 물적.제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이러니 남측에 대해 '상전 노릇'을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닌가.

통일부는 북측에 유감 표명과 함께 성의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이렇게 흐리멍덩하게 넘어가선 안 된다. 합의를 어기면 대가를 치른다는 점을 분명히 각인시켜야 한다. 그래야 북한도 쉽게 합의를 깨지 못할 것이고, 이렇게 돼야 남북관계가 진정으로 한 차원 더 발전하는 것이다. 만의 하나 지원을 더 많이 해 행사를 성사시키겠다는 발상은 아예 접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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