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평양서 사실상 남북 고위급회담…10ㆍ4 선언 기념행사에 김정은은 불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남북이 평양에서 5일 10ㆍ4 선언 11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4ㆍ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에 뜻을 모았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ㆍ4 선언을 한지 11년만에 처음으로 열린 남북 공동행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기념행사에 불참했다.

남북은 이날 오후엔 고려호텔에서 남북 고위급회담 대표단 협의도 열었다. 남측에선 고위급회담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필두로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 정재숙 문화재청장, 임상섭 산림청 산림정책국 국장, 안문현 국무총리실 심의관 등 5명이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고위급회담 북측 단장인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과 전종수 조평통 부위원장, 한상출 적십자 중앙위원회 위원, 박호영 국토환경성 부상, 최명일 조평통 참사 등 5명이 나왔다. 이산가족 상봉을 관장하는 적십자, 철도ㆍ도로 협력을 담당하는 국토환경성 등의 담당자가 다 나온 셈이다.

이선권 위원장은 이 협의를 두고 “준(고위급)회담의 성격”이라고 표현했다. 조명균 장관은 회담에 앞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더 적극적으로 속도감있게 이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큰 중요한 첫걸음”이라며 “오늘 고위급회담 대표단 회의에서 중요한 결실 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5일 평양 인문문화궁전에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에서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박수치며 개회를 알리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5일 평양 인문문화궁전에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에서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박수치며 개회를 알리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민관 대표단은 행사를 위해 4~6일 방북했다. 대표단은 조명균 장관과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참석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동 단장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 국회 및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등 160명으로 꾸려졌다.
 기념행사는 이날 오전 10시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됐다. 북한에서는 헌법상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조명균 장관의 카운터파트인 이선권 위원장 등을 비롯 약 3000명이 참석했다.

5일 평양 인문문화궁전에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박수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5일 평양 인문문화궁전에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박수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행사에서 먼저 연설에 나선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남북 정상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온 겨레에 안겨드린 것은 불멸의 업적”이라며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중략) 이행을 위해 총궐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권 위원장은 이어 철도ㆍ도로 북측 구간 착공식을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할 것을 촉구했다. 착공식 연내 개최는 9월 평양공동선언에도 적시됐으나 대북 제재가 걸려 있어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필요한 사안이다. 이 위원장은 또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을 위한 군사공동위원회의 조속한 가동 등도 거론했다.
 조명균 장관은 단상에 올라 “10ㆍ4 선언은 녹슬지 않은 이정표”라며 “남북관계는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또 “남북은 분단 70년을 넘어 누구도 가지 못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4일 오후 평양 인민문화궁정에서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 합동 만찬에서 건배사를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4일 오후 평양 인민문화궁정에서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 합동 만찬에서 건배사를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해찬 대표도 연설에서 “어떠한 일이 따를지라도 우리는 한걸음씩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꾸준히 내딛어야 한다”며 “한반도 평화와 공동선언의 길을 함께 만들어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행사장 귀빈석인 주석단 뒤쪽으론 파란색 한반도 대형 그림이, 행사장 내엔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평화번영 새 시대를 열어나가자’는 내용 등이 적힌 플래카드가 걸렸다.

 남북 및 해외 참석자들은 행사에서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전진시키자”는 요지의 공동호소문도 채택했다. 조명균 장관과 이해찬 대표, 노건호 씨 등 대표단은 행사 후 김영남 상임위원장, 이선권 위원장 등과 별도 환담 시간도 가졌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오후 평양 인민문화궁정에서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 합동 만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오후 평양 인민문화궁정에서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 합동 만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해찬 대표는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비준 동의안 처리가 돼줘야 안정되게 갈 수 있고 예산이 수반돼 예산 편성이 쉬워진다”며 “국회 차원에서 평화체제로 가려는데 따르는 부수적 법안과 관계법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찬 대표는 또 남북 국회회담과 관련, "(북측 담당자가) 설령 야당이 반대하는 사람이 있떠라도 하겠다"며 연내에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행사 일정 후 대표단은 평양의 유명한 냉면 전문점인 옥류관으로 이동해 오찬을 했으며, 오후엔 만수대 창작사와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관람했다.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포함된 일정이다. 미술품을 제작하는 기관인 만수대 창작사는 해외 판매로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이유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기관이다.

 그러나 유엔 대북제재위는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만수대 창작사 방문과 관련, “만수대 창작사가 해외 자산이 동결되고 거래를 할 수 없는 단체이지만 방문해 관람하는 것은 제재 위반한 행위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냈다. 집체극 ‘빛나는 조국’과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4일 북한이 체제 선전 내용을 줄인 버전을 공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 세 번째)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4일 오후 평양 인민문화궁정에서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 합동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 세 번째)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4일 오후 평양 인민문화궁정에서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민족통일대회' 합동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대표단은 6일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정부 수송기편으로 서해직항로를 이용해 귀환 예정이다. 이번 행사를 위한 체재 비용은 2억8000만원 선 내에서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을 통해 북한에 실비로 지급한다. 주최 측의 비용 부담 관례와는 맞지 않는다. 통일부 이유진 부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대북 제재 틀 내에서 우리 측 참가 인원들의 편의를 위한 교통ㆍ숙박비, 그리고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최소한의 비용을 북한에 실비 지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