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연 안해" 北, 종전-비핵화 연계 거부…종전선언 드라이브에 '찬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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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에서 남측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와 북측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에서 남측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와 북측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2일 “종전은 우리의 비핵화 조치와 바꿔먹을 수 있는 흥정물이 아니다”라고 공언했다. 북한의 공식 선전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서다. 이는 종전선언과 비핵화를 연계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입장 표명이다. 조기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한다는 정부 구상과는 다른 접근인 셈이다.
사실 그간 북한은 한 번도 ‘종전선언을 하면 비핵화 조치를 하겠다’고 명시적으로 약속한 적이 없다. 그보다는 중재자를 자임한 한국 정부가 그런 해석을 내놨다는 쪽에 가깝다. “비핵화를 통한 평화 정착을 추진하는 초입 단계에서 종전선언은 매우 필요한 과정”(9월4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라며 종전선언을 입구에 놓고 비핵화의 동력으로 삼으려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에서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관련국들 사이에서 실행되고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며 종전선언을 강조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정부는 종전선언을 미국을 설득하는 매개체로도 활용했다.
 하지만 조선중앙통신이 종전선언은 흥정물이 아니라고 한 것은 미국이 종전선언을 해준다고 해서 그 대가로 비핵화 조치를 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종전선언시 북한의 핵리스트 제출 등을 받아내야 한다는 워싱턴 조야의 주장을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궤변”이라고 한 것은 종전선언과 비핵화 초기 조치 사이에 등가성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의 이날 논평은 9·19 평양공동선언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미 측의 상응하는 조치’가 종전선언 이상이라는 뜻도 된다. 통신은 이날 영변 핵시설을 “우리 핵계획의 심장부와도 같은 핵심 시설”이라고 표현하며 영변 폐기가 지니는 의미를 부각했다.
 일각에선 종전선언의 함정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정부는 섣부른 종전선언을 경계하는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고 전제했다. 하지만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종전선언을 “60년 전 이미 취했어야 할 조치”라고 당연시한 것은 종전선언은 북·미 협상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상징적 조치가 아니라 미국이 당연히 했어어야 하는 조치라는 북한의 논리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비핵화 협상 카드로서 종전선언의 가치가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종전선언은 여전히 북·미 간 신뢰 구축을 위한 핵심조치로 기능할 수 있으며, 이날 북한의 입장은 협상 초입의 밀고 당기는 기싸움 과정에서 나온 선제공격 성격도 짙기 때문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말은 이렇게 해도 북·미 회담을 앞두고 종전선언을 포기할 리가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시한을 박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시간에 쫓기지 않겠다고 나오니, 북한은 이런 식으로 미국에 ‘좀 더 열심히 임해봐라’, ‘폼페이오 장관은 빈손으로 오지 마라’는 경고 성격의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지혜·권유진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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