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420억원 내고 9명 구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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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라크에서 납치된 자국 인질들을 무사히 귀환시켜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샀던 프랑스.이탈리아.독일이 사실은 납치범들에게 거액의 몸값을 지급해 왔다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22일 보도했다.

신문은 납치범들과의 협상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바그다드의 보안요원이 확보한 문서를 근거로 이들 세 나라가 9명의 인질을 석방시키기 위해 지난 21개월 동안 4400만 달러(약 420억원)를 쏟아부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3개국은 자국민 보호를 위해 인질 한 명당 최소 250만 달러에서 최고 1000만 달러까지 돈을 냈다. 프랑스 '리베라시옹'지의 여기자 플로랑스 오베나의 몸값이 1000만 달러로 가장 비쌌다. 오베나는 지난해 1월 이라크에서 취재 도중 납치돼 5개월 이상 감금됐다. 이달 초 풀려난 레네 브라운리히와 토마스 니츠케 등 두 명의 독일인 기술자에게는 500만 달러가 들어갔다. 이들이 석방됐을 당시 일부 독일 언론은 "1000만 달러 이상의 몸값이 지급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독일 주재 이라크 대사도 독일 정부가 '상당한 액수'를 건넸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국들은 이 같은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몸값 요구도 없었고, 지급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외교장관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이와 관련, 더 타임스는 이번 문건을 본 서방의 다른 나라 외교관들이 "몸값을 내는 것은 더 많은 외국인 인질을 납치하도록 조직 범죄를 부추기는 꼴"이라며 3개국 정부에 화를 냈다고 전했다. 이라크 주재 한 고위 외교관은 "이론적으로는 납치범들에게 '보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누구나 동의한다"며 "그러나 몇몇 국가는 실제로 돈을 내놓았고, 이는 (원칙을 지켜 몸값을 내지 않는) 다른 나라 인질들을 더욱 위험하게 한다"고 말했다. 영국 보수당 의원인 리암 폭스도 "인질의 안전을 위해서도 납치범들이 서방 정부가 돈을 낼 것이란 생각을 하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신문은 이 밖에 "3개국 외에 터키.루마니아.스웨덴.요르단 등도 인질 석방을 위해 돈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고 덧붙였다. 또 미국과 이라크 이중 국적을 가진 회사원 4명은 고용주가 돈을 내는 조건으로 풀려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라크에서는 2003년 미국의 침공 이후 250명 이상의 외국인이 납치됐다. 이 중 적어도 44명이 살해됐고, 135명은 풀려났다. 3명은 탈출했고, 6명은 구출됐다. 나머지의 생사는 미확인 상태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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