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70세가 되면 누구나 죽어야 한다는 법이라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반려도서(48) 

『70세 사망법안, 가결』
가키야 미우 지음·김난주 옮김 / 왼쪽주머니 / 1만5000원

70세 사망법안, 가결

70세 사망법안, 가결

일본에서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었다.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하는 법이다. 급속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일본의 연금제도는 붕괴하고 국민 의료보험은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몇 종류의 안락사 방법을 준비해 죽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사람의 목숨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게 가능하겠냐 싶지만, 이런 황당무계한 설정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들리는 건 그만큼 사회적으로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해서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이런 설정 아래에 펼쳐지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개인과 사회가 맞닥뜨려야 할 다양한 현실적인 불안과 불행이 내포되어 있다.

정신은 멀쩡하지만 거동이 어려운 시어머니를 집에서 돌보는 50세 중반의 며느리 다카라다 도요코는 혼자서 오롯이 부양의 부담을 지고 있다.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친 그가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보지만 남편도, 자녀도, 시누이도 철저하게 외면한다. 그는 다행히(?) 가출이라는 출구를 찾지만 길어지는 부양 스트레스로 부모나 배우자를 숨지게 했다는 신문 사회면의 기사가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일류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에 취직했지만 인간관계 때문에 퇴직한 뒤 3년이 지나도록 마땅한 일자리를 못 구해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아들 다카라다 마사키는 일본에서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중년의 히키코모리를 떠올리게 한다. 58세인 도요코의 남편 다카라다 시즈오는 70세 사망법안 시행을 앞두고 여생을 즐기겠다며 조기 퇴직해 세계여행에 나서는데,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이 시대 가장의 표본이다.

딸인 다카라다 모모카는 시어머니 수발에 지친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고 도와 달라는 말에 집을 나와 혼자 살면서 이런저런 직장을 전전하다 결국 노인 요양원에서 일한다. 책은 이 밖에도 젊은 세대의 취업난, 악덕 기업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노동 환경, 노인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처우 등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꼬집는다.

무거운 주제를 황당하게 다루고 있지만 소설이 어둡지만은 않다. 다소 엉뚱한 쓴웃음을 주기도 한다. 일본의 이야기지만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머지않아 누구나 맞닥뜨려야 할 수도 있다. 코미디 같기도 하고 SF소설 같기도 한 이 소설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서지명 기자 seo.jimyeong@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