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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원전, 수소차-태양광 찰떡궁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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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호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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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7월 24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전력 소비가 급증한다. 두텁게 깔린 구름 때문에 태양광 발전은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고 바람도 잦아들어 풍력 발전기도 거의 멈췄다. 에어컨을 가동하느라 배터리가 닳은 전기차들까지 충전을 시작하자 오후 5시쯤 전력예비율이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쳤다. 정부는 긴급히 전기차 충전 중단 조치를 내렸다. 발이 묶인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졌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 12년 후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을 가상으로 구성해 봤다.

정부, 2030년 전기차 100만 대 보급 #충전 몰릴 땐 전기 부족할 가능성 #태양광 등 환경 따라 들쑥날쑥 #여유 있을 때 수소 만들어 저장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전력 확보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물론 전기차 충전이 만성적인 전력 부족을 불러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자연환경에 따라 전력 생산의 편차가 큰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마냥 안심할 수만도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100만 대의 전기차를 보급할 방침이다. 이로 인한 추가 전력수요는 여름철 기준으로 0.38기가와트(GW) 정도일 것으로 추산한다. 전기차 보급이 활발한 제주도 및 미국 캘리포니아의 시간대별 충전 패턴을 분석한 결과 퇴근 후 충전이 보편적이어서 최대전력 발생 시간대(오후 3시 전후)의 영향은 제한적이며 오히려 남아도는 심야전기를 활용할 수 있어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저부하를 담당하는 원전의 경우 24시간 꾸준히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수요가 줄어드는 심야에는 전기를 그냥 흘려보낸다. 이를 자동차에 충전해 놓았다 주간에 활용하는 것이다. 원전은 전기료도 싸다. 한전에 따르면 연료비와 운영비·건설비 등을 포함한 전력 생산 원가는 ㎾h당 원전이 60원 수준으로 가장 낮고, 다음이 석탄(80원), LNG(110원), 신재생에너지(120원) 순이다.

햇빛·바람 없을 땐 신재생에너지 올스톱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문제는 정부가 원전 비중을 낮추고 신재생에너지를 늘릴 방침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내놓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17GW이던 발전설비 용량은 2030년 174GW로 늘어난다. 원전 비중은 12%로 낮아지는 반면 신재생에너지는 33%(59GW)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는 환경에 따라 편차가 크다. 이를 감안한 실효설비는 118GW 수준으로 올해와 큰 차이가 없다. 설비용량이 59GW에 달하는 신재생발전소의 실효용량이 8.8GW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월 24일 오후 5시 우리나라의 전력 수요가 9248만㎾(92GW)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유 전력은 709만㎾(7GW)로 전력 예비율은 7.7%였다. 이 같은 상황이 2030년에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장마 등으로 태양광 발전이 중단되고 전기차 충전이 평소의 두세 배 정도로 늘어나는 경우다. 최연혜(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월 24일 오전 7시 독일에서 햇빛도 바람도 없는 순간을 뜻하는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가 실제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전력 수요가 70GW에 달했지만 그 시각 풍력 발전량은 0.8GW, 태양광은 제로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피하려면 대용량 외장배터리 격인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을 활용해야 한다. 1㎿h 용량의 ESS 가격은 현재 5억원 정도다.

전기차와 달리 수소차는 신재생 발전과 궁합이 좋다. 실시간으로 전기를 연결해 충전해야 하는 전기차와 달리 에너지 여유가 있을 때 수소를 만들어 저장해 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정용 발전기로 활용할 수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8월 투싼 수소차 3대를 이용한 수소전기하우스 시연 행사를 열었다. 전등 80여 개에 불이 들어오고 에어컨 5대와 TV도 가동했다. 주행하지 않을 때는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추가 비용 없이 ESS 역할을 하는 셈이다. 수소가 에너지 저장장치 역할을 하는 ‘수소경제’다.

수소 생산 때 값비싼 백금 촉매가 걸림돌

수소차의 문제는 비싼 비용이다. 수소 연료전지의 발전 효율은 47%로 화력(35%)이나 태양광(17%)보다 높지만 물을 분해해 수소를 얻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 게다가 연료전지에는 촉매로 g당 5만원이 넘는 백금이 10g 이상 들어간다. 현재 수소 생산량도 넉넉지 않다. 가스안전연구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연간 수소 생산량은 210만t 정도다. 이 가운데 140만t이 울산·여천 등 석유화학단지의 유화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생수소다. 현대차는 이를 활용해 수소차 200만 대가 주행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에너지연구원은 유화 업계나 발전소에서 쓰고 남는 부생수소가 10만t 수준으로 수소차 10만 대를 운행하는 데도 빠듯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수소경제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백금을 대체할 촉매의 개발과 수소를 생산할 충분한 전력의 뒷받침이 필수적인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4일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을 중심으로 수소차·자율주행차·커넥티드카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예정이다. 수소위원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양웅철 현대차 부회장은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제3차 총회’에 참석해 “화석연료를 일절 쓰지 않고 풍력과 태양광만으로 수소를 생산해 수송 분야에서 100% 탈탄소화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수소위원회는 주요 글로벌 완성차업체와 에너지기업 50여 곳이 참여하고 있다.

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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