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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에 쓰러진 아내에게 "쇼"라고 욕한 남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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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만 같아라’는 옛말…늘어나는 이혼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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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온 가족이 모이는 민족 이벤트지만 최근 명절에 따라붙는 꼬리표 중 하나는 부부싸움과 이혼이다. 시댁과 친정을 둘러싼 감정싸움 등이 발생하기 쉬워 명절 때만 되면 이혼을 고려하는 부부가 늘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명절 스트레스' 이혼 신청…인정되려면?

실제로 법원에 접수되는 이혼 신청 건수는 명절 직후 급증한다. 2012년 설부터 지난해 설까지 대법원 ‘월별 이혼 접수 건수’ 통계를 이용해 설·추석이 있는 달과 그다음 달의 이혼 접수 현황을 분석한 결과 명절 전후에는 매번 이혼 신청이 증가했다.
설의 경우 연휴 이후 많게는 34.56%(2015년 2~3월)까지 늘었으며, 평균 이혼신청 증가율은 15.56%로 조사됐다.

이혼상담도 명절 직후에 급증한다. 지난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추석 직후 3일간 이혼상담을 요청한 건수(28건)는 2017년 일평균 상담 건수(21건)와 비교하면 3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적인 부당 대우나 폭력·폭언 있어야

전문가들은 ‘명절 스트레스’로 인한 이혼신청이 많기는 하지만 직접적인 이혼 사유로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민법 제840조는 재판상의 이혼사유와 관련해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이혼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명절에만 과도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고 고부갈등을 겪는 정도로는 재판부가 이혼을 허락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시댁 또는 남편과의 갈등이 장기간 이어져 왔을 경우 명절 부담이 일종의 ‘트리거’처럼 작용할 수는 있다. 부광득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명절 스트레스가 이혼사유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남편의 직계존속(조부모·부모)으로부터 지속적인 폭언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는 걸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며 “명절 직후의 이혼은 대부분 쌓여왔던 갈등이 폭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소 남편과 싸움이 잦았던 A씨는 명절에 시댁에 갔다가 스트레스로 쓰러졌다. 고부갈등이 극에 치달았지만 남편은 A씨의 편을 들기는커녕 시어머니의 편만 들며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남편은 쓰러진 A씨에게 “쇼를 하는 게 아니냐”며 폭언을 하기도 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실제 접수된 사례다.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장은 “A씨는 전형적인 명절 이혼 사례의 하나로, 상담 때 고백한 피해를 법정에서 입증만 하면 이혼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남편과 시댁으로부터의 지속적인 폭언은 법에서 이혼 사유로 규정한 부당한 대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법원 판례를 보면 남편 뜻에 따라 연간 10여 차례에 이르는 시댁 제사에 참석했던 B씨는 추석 전날 혼자 차례를 준비하는 등 명절에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려 가정법원을 찾았다. 재판부는 B씨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시부모를 자주 방문해 저녁 식사를 하는 의무에 시달렸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 “부부의 관계가 더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이혼을 허락했다.

여성인권 중시하는 추세

법조계에서는 여성인권과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변화가 이혼소송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재판부가 여성의 이혼 의사를 존중하고 이혼 소송 형태도 다양해지는 추세라는 것이다. 서울가정법원 판결 기준으로 여성의 재산분할 비율은 1998년엔 31~40% 인정된 경우가 30.8%로 가장 많았고 2004년엔 전체의 40.7%가 절반 미만의 재산분할 비율을 보였다. 그러나 2014년에는 여성에게 50%가 인정된 경우가 43%에 달했다.

부 변호사는 “이혼소송을 담당하는 실무자로서 재판부가 이혼에서 여성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의 이현곤 변호사는 “더는 친정에서 ‘참고 살라’는 식으로 이혼을 말리는 경우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엔 남자 쪽에서 ‘사위살이’의 설움을 말하며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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