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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상태서 옆 차 치고 터널 벗어나…'뺑소니' 아닌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음주운전 교통사고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음주운전 교통사고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지난해 여름 어느 토요일 아침, A씨(27)는 혈중알콜농도 0.162% 상태로 용인 영동고속도로 마성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대부분의 터널 안 도로가 그렇듯, 마성터널 안 도로에도 차선변경을 금지하는 흰색 실선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A씨는 1차로에서 2차로로 차선을 바꿨다. 그러는 과정에서 2차로에서 운전중이던 B씨(40) 차의 오른쪽 옆 부분을 받아버렸다.

A씨는 차를 멈추지 않았다. B씨나 B씨 차량의 상태를 확인하거나 괜찮냐고 묻지 않았고, 자신의 인적사항과 연락처를 알리지도 않았다. A씨는 그대로 터널을 빠져나갔다. 사이드미러가 파손된 B씨가 한 발 늦게 추격에 나섰다. 두 차가 멈춘 건 용인IC로 나가기 전 갓길에서였다.

한 터널 도로 내부의 모습.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한 터널 도로 내부의 모습.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사고를 낸 줄도 몰랐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경찰에서 A씨는 "술에 취한 상태로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것이라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마성터널을 빠져나온 뒤에야 우측 사이드미러가 접힌 채 손상돼 있는 걸 봤다. 그래서 차를 세우기 위해 차선변경을 하고 있었는데, B씨 차량을 발견하고 갓길에 차를 세운 것이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검찰은 "A씨는 도주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었다"고 봤다. "교통사고가 발생한 걸 명백히 인식하면서도 용인IC 쪽으로 도주하려다가, 차량의 정체로 도주가 여의치 않으니 뒤따라온 피해자 차량을 보고 뒤늦게 후회하며 정차한 것이다"는 게 검찰의 생각이다.

뺑소니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뺑소니 관련 이미지. [중앙포토]

검찰은 A씨를 도주치상·사고후미조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했다. '뺑소니'를 처벌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과 도로교통법상 사고후미조치는 각각 법정형이 1년이상 유기징역 또는 500만원이상 3000만원 이하,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무거운 범죄다.

하지만 법원은 1·2심 모두 "A씨가 뺑소니는 아니다"고 봤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한 것은 맞지만,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으로 볼 수 있을 뿐 특가법상 '도주치상'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영동고속도로. [연합뉴스]

영동고속도로. [연합뉴스]

1심을 맡은 수원지법 형사2단독 이수환 판사는 "A씨는 마성터널을 빠져나와 차량이 정체돼 있는 3차로로 차선변경했다"는 점과 "B씨와 동승자는 별다른 치료 없이 휴가를 보냈고 사고 발생일로부터 4일이 지나 염좌 등으로 1회 물리치료를 받았고 차 수리비용은 125만원 정도로 경미했다"는 점을 중요하게 봤다. 그렇다면 "차량 왕래가 많은 고속도로에서 구호조치를 하면 교통방해를 하거나 2차사고를 야기할 위험성이 매우 높아 터널을 벗어나 갓길로 가려고 현장을 이탈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판사의 결론이다.

수원지법 형사항소2부(부장 이오영)는 지난달 10일 A씨의 혐의 중 도주치상·사고후미조치를 무죄로 본 1심 판결엔 틀린 점이 없다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고 당시 사실상 구호조치가 필요 없었다는 점도 감안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이 "다치신 데 있나요, 구급차 불러드릴까요?"라고 물었지만 B씨가 "괜찮다"고 했다는 것이다. 또 두 차가 멈춘 갓길이 사고지점으로부터 2km 떨어진 곳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재판부는 "즉시 정차하지 않고 현장에서 약간 떨어진 갓길에 정차했다고 해도 이를 이유로 도주의 범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과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은 유죄로 인정돼 A씨에겐 벌금 800만원이 선고됐다. 검찰과 A씨 모두 상고하지 않아 판결은 지난달 확정됐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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