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전쟁과 평화

전쟁터에도 퓨전 바람 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이철재 기자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높은 산, 거친 골짝, 깊은 강물도 우리 용사 앞에는 거칠 것 없네.’(육군가)

‘우리는 해군이다 바다의 방패.’(해군가)

‘하늘을 지키는 우리 힘을 믿으라.’(공군가)

이들 군가에서 대한민국의 육·해·공군은 각각 하늘과 땅, 바다에선 최강이라고 자랑한다. 육군은 지상에서, 해군은 해상과 해저에서, 공군은 상공에서 적을 이기면 됐다. 지금까지 전쟁은 그랬다.

그러나 퓨전, 크로스오버, 융합이 대세인 요즘, 싸움의 방법도 달라졌다. 지난 7~8월 태평양에서 펼쳐졌던 림팩(RIMPAC)이 대표적 사례다. 림팩은 미국 해군이 주도해 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참가하는 다국적 해군 훈련이다. 2년마다 열린다. 그런데 올해 처음 미국 육군과 일본 육상자위대가 림팩에 참가했다. 미국 육군과 일본 육상자위대는 림팩에서 뭍에서 지대함 미사일을 발사해 해안의 표적(퇴역 함선)을 격침했다. 지난번까지는 전투함이나 잠수함, 해군 소속 항공기만이 이런 훈련을 했다.

최근 미군은 다영역(Multidomain) 작전 또는 다영역 전투에 열심이다. 쉽게 풀면 ‘육·해·공군이 자신의 싸움터(영역)를 벗어나 다른 영역까지 넘나들면서 싸운다’는 개념이다. 육군과 해병대의 포병은 기존 육상 목표물만 포격했지만, 앞으론 적의 미사일이나 항공기를 격추하거나 적 함선을 공격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까지 전쟁터로 편입됐다. 이제 전쟁이 여러 영역에 걸쳐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이다.

미군은 미래전에선 전투 상황과 임무에 맞게 유연하게 지휘구조와 무기를 선택하려고 한다. 미군의 최신 교리 문서를 읽다보면 컨버전스(convergence)와 통합(integration), 시너지(synergy)란 단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눈을 돌려 한국군을 보자. 다영역 작전은커녕 3군간 합동성도 아직 미숙한 단계다. 육군이 합동성 얘기만 꺼내면 해군과 공군은 일단 경계한다. ‘총론은 합동성, 각론은 각군 이기주의’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육군이 그동안 자원을 독식하다시피 한 책임이 크다.

다영역 작전은 좁은 한반도의 전장 환경과 맞지 않을 수 있다(윤석준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 그러나 적과 싸워서 이기려면 육·해·공군, 해병대가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합동성은 단순한 인수합병(M&A)이 아니다. 둘이 힘을 합하면 셋 이상의 효과를 내야 하지 않을까. 다영역 전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