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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책임에 정년도 없는 리더, 엄마들의 수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44)

8월 말 영월에서 내가 속한 방송대학과의 문화제 행사가 있었다. 학교의 특성상 전국 각지에서 모이다 보니 1200명의 인원에 준비도 상상을 초월했다. 평균 연령이 40대 후반인지라 모두가 사회생활의 경험이 있으니 협조도 잘 됐다. 늦깎이 학생의 열성에 축제는 늦도록 이어져 밤을 새우는 토론장으로 바뀌었지만, 밤을 새운 아침의 모습도 모두 싱싱했다.

문화제에 참석해 즐거운 한때를 보내며 참석자들과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학우회 이재활 부회장과 동기 둘, 나, 박미성 학우회장, 류상열 학우. [사진 송미옥]

문화제에 참석해 즐거운 한때를 보내며 참석자들과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학우회 이재활 부회장과 동기 둘, 나, 박미성 학우회장, 류상열 학우. [사진 송미옥]

그 많은 학생이 얼마나 질서 있게 행동하는지 숨은 듯 내조하는 각 지역·학년·동문 대표의 책임감과 노고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축제가 끝나고 이번 모임을 주관한 지역 회장이 나와 끝인사를 하는 도중 “이렇게 순조롭게 마무리되어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라며 울컥 눈물을 보였다. 순간 모두가 울컥했다. 회장의 노고에 깊이 감동하게 한 끝인사였다.

혹시나 오다가다 사고라도 나면, 다치기라도 하면, 아프기라도 하면, 나이 든 사람들이니 음주가 지나쳐 싸우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걱정이라 모임이 끝날 때까지 밤잠을 얼마나 설쳤겠는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앞장을 선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서로의 생각과 성격과 각자 살아온 자기만의 색색이 더 견고해진 중년의 다양한 사람을 통솔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렵고 힘든 일이다. 돈을 받고 하는 것도 그렇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하는 모임의 리더는 회원의 협조 없이는 발전도 즐거움도 없다.

인터넷이 발달해 별별 카페, 동호회 모임, 밴드 모임, 유튜브 모임 등등 온갖 모임이 있지만 10년 이상 지속한 모임은 회원이나 앞장선 수장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이 얼마나 큰지 당사자가 되어봐야 안다.

전국에서 모인 문화제 행사답게 각 지역 학생들이 그 지역을 대표하는 연극이나 춤 등을 선보였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국채보상운동' 연극의 한 장면을 발표했다. [사진 송미옥]

전국에서 모인 문화제 행사답게 각 지역 학생들이 그 지역을 대표하는 연극이나 춤 등을 선보였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국채보상운동' 연극의 한 장면을 발표했다. [사진 송미옥]

성격상 스스로 공장장 타입이라 생각하는 나는 어떤 모임에 합류하면 되도록 수장의 뜻에 따라 행동하고 보이지 않게라도 열심히 보조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내가 가입해 있는 동호회 모임은 모두 2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했다. 같이 나이 들고 희로애락의 시간을 함께 나누며 지내온 가족 같은 모임으로 지속하고 있다.

가정도 그런 것 같다. 엄마라는 이름의 리더가 없으면 가정은 그냥 무너진다. 조금 방향이 다른 이야기지만 며칠 전 서울에 볼일이 있어 올라간 김에 만난 친구들의 모임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언제까지 앞장서서 가정을 이끌고 나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우리에겐 정년퇴직이란 없는 것일까?’라는 주제로 재밌는 수다를 떨었다.

대부분이 다 자식을 출가시켜 손주를 본 친구들의 푸념이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동감과 위로가 이어진다. 평생을 가족이라는 부대를 끌고 이리저리 채이며 앞장서서 지켜온 엄마라는 회장 자리는 왜 나이 들수록 더 초라하고 힘에 부대끼는 거냐며 투덜거리며 웃다 보니 스트레스도 풀렸다.

젊을 때 앞장서서 걷던 어깨만 봐도 믿음직하던 남편들도 나이 들어서는 부인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어린아이로 변해 버리는지 그것도 알고 싶다며 뒷담화를 하다 보니 이런저런 도움 되는 이야기로 모두 혼자 만든 처방전을 가슴에 넣어두었다.

그렇게 수다를 떨고 있는데 정년퇴직하여 집에서 쉬고 있는 한 친구 남편의 “언제 오냐?”는 전화 한 통과 이번에 아기를 낳아 친정서 쉬고 있는 친구 딸의 “언제 오냐?”는 전화가 연달아 이어져 배꼽을 쥐고 웃었다. 어쨌거나 엄마라는 회장직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이 아직은 가장 큰 선물인 것 같다. 그리고 이번 대화에서 딸이 없어 기죽어 있던 아들 둘 가진 친구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며느리는 친정엄마만 귀찮게 하니까. 하하~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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