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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복면가왕’, 일본판 ‘굿닥터’…한국 원작 잘 나가네

중앙일보

입력

“미국 LA의 태국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딸이 ‘아빠, TV 좀 봐봐’ 하더라고요. 고개를 들어보니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이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거에요. 바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복면가왕’ 인기가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그때 직감했죠. 아, 이건 사야 돼. 틀림없이 미국 시청자들도 좋아할 거야.”

내년 1월 미국 FOX에서 방송하는 미국판 ‘복면가왕(The Masked Singer)’이 탄생하게 된 일화다. ‘아메리카 갓 탤런트’ ‘딜, 노딜’ 등 인기 높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제작해온 크레이그 플레스티스 스마트독미디어 대표는 지난해 우연히 태국판을 보고 한국 MBC의 원작을 찾았다. “넌 해고야(You’re fired)”란 유행어로 트럼프를 대통령 취임 이전에 TV스타로 만든 ‘어프렌티스’도 NBC 시절 그의 손을 거친 작품이다.

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BCWW에 참석한 스마트독미디어 대표 크레이그 플레스티스 . 미국판 '복면가왕' 제작자로 NBC에서 '아메리칸 갓 탤런트' '딜, 노딜' 등을 제작했다.[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BCWW에 참석한 스마트독미디어 대표 크레이그 플레스티스 . 미국판 '복면가왕' 제작자로 NBC에서 '아메리칸 갓 탤런트' '딜, 노딜' 등을 제작했다.[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주관으로 4~7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방송영상마켓(BCWW)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한 플레스티스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의 성공과 방탄소년단의 활약만 봐도 지금 전 세계가 아시아 콘텐트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다”며 “각국의 제작자들의 관심이 쏟아질 테니 한국 입장에선 앞으로 6개월이 미국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 진출할 적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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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BCWW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것 역시 K포맷이다. 미국판 ‘꽃보다 할배(Better Late Than Never)’가 미국 지상파 NBC에서 올 초 시즌 2까지 이어지며 한국 예능 포맷이 단발성 아닌 장기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준 덕분이다. 드라마 ‘굿닥터’의 미국판 역시 현지 지상파 ABC에서 오는 24일 시즌2 방영을 앞두고 있다. 일본판 ‘굿닥터’도 현재 후지TV에서 13%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호평받고 있다.

해외 제작자들이 꼽는 K포맷의 매력은 독특함. 특히 음악 예능의 경우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가 불가리아 등 7개국, JTBC ‘히든싱어’가 이탈리아 등 4개국에서 방영될 만큼 인기가 높고 경쟁도 치열하다. 플레스티스는 “좋은 포맷은 20초 안에 설명할 수 있는 차별화된 특징이 있어야 한다”며 "‘아메리카 갓 탤런트’ 파일럿을 봤을 때 가장 좋았던 게 탈락자에게 뜨는 ‘X’ 표시였다면, ‘복면가왕’은 가면이었다. 친근하지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공개된 미국판 '복면가왕' 예고편. 한층 화려한 의상과 커다란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 FOX]

지난달 공개된 미국판 '복면가왕' 예고편. 한층 화려한 의상과 커다란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 FOX]

미국판에서 제일 공을 들인 것 역시 가면 제작이었다. 지난달 공개된 미국판 예고편은 피부색이 드러나지 않게 전신을 뒤덮은 가면도 등장한다. 플레스티스는 “그래미 수상자 등 초호화 출연진을 구성했다”며 “이미 제작을 마친 데다 방송까지 5개월 정도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보안 유지에 극도로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은 특정 연령대를 겨냥한 프로그램이 많아 규모를 키우기 어려운데 한국엔 8세 아이부터 80세 노인까지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친화적 포맷이 많은 것이 매력적”이라며 “현재 포맷을 2~3개 정도 더 구매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포맷 판매 후 상대 국가를 오가며 새로운 포맷이 탄생하기도 한다. 11월 SBS에서 방영을 앞둔 ‘더 팬’(가제)은 바니제이 그룹과 공동 기획 및 개발한 작품이다. 지난해 ‘판타스틱 듀오’ 스페인판을 제작한 바니제이 측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팬 문화를 보고 영감을 얻어 준비 단계에서부터 팬과 스타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김영욱 PD는 “단순히 포맷을 가져다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사전 시장조사를 통해 새로운 것을 끌어내고자 하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주연을 맡은 야마자키 켄토와 우에노 주리의 열연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판 '굿닥터'. [사진 후지TV]

주연을 맡은 야마자키 켄토와 우에노 주리의 열연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판 '굿닥터'. [사진 후지TV]

드라마는 나라별 문화 차이에 따라 각색의 비중도 크다. 일본판 ‘굿닥터’를 제작하고 있는 후지TV의 구보타 사토시 PD는 “2년 전 일본판 ‘미생(HOPE)’을 만들 때는 비정규직·취업난 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한국 상황과 달라 각색이 힘든 측면이 있었지만 ‘굿닥터’는 한결 수월했다”고 밝혔다. 의료 드라마나 수사물 같은 장르물은 이미 확립된 공식이 있어 현지화가 쉬웠다는 얘기다. 그는 “일본 드라마는 대개 10회로 한국판(20회)의 절반 정도 분량이어서 다른 캐릭터보다는 주인공에 집중하는 데 주력했다”며 “시즌2 제작도 긍정적으로 논의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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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확장 가능성 역시 중요한 요소다. ‘굿닥터’ 판매를 이끈 유건식 KBS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원은 “과거 인기 미국 드라마 ‘천재 소년 두기’(1989~1993)의 경우 소년이 자라 성인이 되면서 더이상 이야기를 전개할 수 없었다”며 “‘굿닥터’는 소아과를 배경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의료 케이스에 따라 얼마든지 이야기를 늘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판 제작사인 엔터미디어콘텐츠의 이동훈 대표는 “시즌2는 원장(리차드 쉬프)의 뇌종양 투병기와 숀(프레디 하이모어)의 소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며 “주연배우 프레디 하이모어가 작품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1회의 극본, 10회의 연출에 참여한다”고 귀띔했다.

'굿닥터' '미생' 등 한일 드라마 교류에 앞장 서고 있는 후지TV의 구보타 사토시.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굿닥터' '미생' 등 한일 드라마 교류에 앞장 서고 있는 후지TV의 구보타 사토시.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사토시 PD는 “기존 지상파뿐만 아니라 케이블, 스트리밍 플랫폼 등 다양한 업체가 제작에 뛰어들면서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원작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며 “이는 일본과 한국뿐 아니라 해외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일본 드라마, 특히 후지TV 원작은 6월 종영한 MBN ‘리치맨’과 다음달 방영을 앞둔 KBS2 ‘최고의 이혼’, tvN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 등 올해만 3편이 방영될 정도로 쌍방향 교류가 활발하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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