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결혼 비용이 9천만원이라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전국의 결혼 당사자들과 혼주 4백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결혼비용이 9천88만원이었다고 한다. 2003년도 도시근로자 가계소득이 월 2백83만원임을 떠올릴 때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이처럼 결혼비용이 늘어난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치풍조와 정부의 뒤틀린 주택정책, 각 가정의 비뚤어진 자녀관이 이루어낸 합작품이다. 고작해야 한두 명인 소자녀 가정으로 바뀌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묵은 한을 풀 듯 자녀를 풍족하게 키우기에만 급급했다.

이런 가정의 분위기가 오늘날 결혼 당사자들로 하여금 결혼식을 경쟁적으로 보다 호화롭게, 이색적인 것으로 꾸미게 만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접살림 비용이 과거보다 줄어든 대신 예식.피로연.신혼여행비가 급속하게 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새 가정이 출발부터 낭비로 이끌어지고 있는 셈이다.

더욱 문제는 제반 결혼비용을 대부분 부모가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혼연령은 갈수록 높아져 이제 서른살 안팎이 되었지만 부모에게 의존해 결혼을 하고 있는 것은 여전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양가의 체면 치레를 가중시켜 결혼비용을 불리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각 가정은 자녀들로 하여금 결혼비용은 제 스스로 벌어 충당하게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켜나가도록 함으로써 당사자들의 새 가정에 대한 책임의식을 키워주고 자립의지를 강화시켜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임대주택 위주의 주택정책을 펴나가 각 가정의 노력이 현실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결혼비용의 70%를 신혼집 마련에 써야 하는 한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30만쌍씩 쏟아져 나오는 신혼부부들이 엄청난 집값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정부는 싼값에 제공하는 장기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결혼은 사랑하는 이와 가정을 이룸으로써 모든 이에게 축복받는 자리다. 결혼비용으로 인해 '행복한 가정'이 출발부터 얼룩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