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GE 최고위 임원 … 아시아·태평양 에너지 부문 최치훈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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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세계 시가 총액 1위 기업인 미국 GE에 한국인으론 처음 '오피서(officer)'라고 불리는 최고위 임원이 탄생했다. 최치훈(49.사진) GE에너지 아시아.태평양 사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발전 장비 사업 등을 하는 미 GE에너지 본사에서 영업을 맡다가 지난 10일 아.태 사장으로 승진했다. 오피서는 제프리 이멜트 회장(CEO) 바로 아래 직급으로 전세계 GE 사업장에 170여명이 있지만 아시아인은 10명 뿐이다.

일본 도쿄의 아.태 본부 부임 직전 한국에 들른 그는 15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운이 좋았지만 결코 쉽게 된 건 아니다"러고 말했다."GE가 감당하기 힘든 일을 내게 맡겨가면서 능력을 계속 시험한 게 나의 운이었다"는 설명이다.

최 사장은 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1967년 초등학교 2년 때부터 멕시코.영국.미국 등지에서 자랐다. 미국에서 대학과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뒤 8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들어와 공군 장교로 3년간 복무했다.

그는 "군대생활은 공백이 아니었고 오히려 군대가 인연이 돼 GE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80년대 후반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선정 사업과 관련해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인이면서 미 MBA 출신 중에 한국 공군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찾아 자신을 뽑게 됐다는 얘기다. 그의 한국말 구사능력은 어려운 한글단어를 쓸 정도로 완벽했다.

회사가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힘겨운 일을 맡겼을 때는 지옥에 떨어진 느낌이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98년 아.태 에너지 영업 담당(전무급)으로 발령을 내더군요. 외환위기로 아시아 경제가 최악인데다가, 항공기 사업부에서 넘어왔다고 직원들이 상사로 인정해 주지도 않고…. 사표를 낼까 하다가 1년간 이를 악물고 뛰었습니다. 실적이 올라가자 비로소 저를 상사로 대접하더군요."

이에 앞서 93년엔 GE 본사에서 "시민권이든 영주권이든 원하는 걸 주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엄연한 한국인이고 언젠가 한국에서 살겠다는 생각에 거절했다" 고 했다. 불편한 점도 많았다.

한국국적으로 미국 비자를 받아 왔다갔다 하다가 2004년 초엔 미 입국 심사대에서 문제가 생겨 서울로 되돌아 온 적도 있었다. 그래도 영주권을 얻을 생각은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두 살 때부터 외국 생활을 한 아들(고교 1년) 도 한국군 복무를 의무로 여긴다고 그는 말했다.

"GE는 석탄을 때면서도 공해 물질은 적게 뿜어내는 기술(청정석탄기술)을 갖고 있어요. GE가 두산중공업에 발전 장비 제조를 많이 맡기듯이 청정석탄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비즈니스를 함께 할 한국 기업을 찾아보겠습니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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