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위안貨도 뜨거운 감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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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요즘 미국의 관심사는 질곡에 빠진 이라크의 전후처리만이 아니다. 위안(元)화도 뜨거운 감자다. 존 스노 재무장관은 이달 초 중국을 방문해 위안이 인위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며 달러에 대한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시장이 위안의 값을 자유롭게 정하도록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라는 것이다. 미 의회는 한술 더 떴다. 여야 의원들은 위안의 인위적 저평가는 불공정 무역에 해당한다며 행정부가 이를 조사해 사실로 판명되면 중국산 수입품에 상계관세를 물리라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와 유사한 법안들이 두개나 더 계류 중이다. 미 제조업연합회(NAM)도 비슷한 이유로 중국을 정부에 제소할 방침이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지난해 1천30억달러를 기록했다. 중국은 이제 미국의 최대 무역흑자국이다. 올 들어 7월 한달의 흑자만 1백13억달러다. 이 추세라면 올 흑자는 1천3백억달러를 넘는다. 통계에 따르면 2001년 1월 이후 미국의 일자리는 2백60만개가 줄었다.

경제는 풀려간다지만 아직 뚜렷한 회복세는 아니다. 내년 선거에 앞서 확실한 반전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 정치인들은 희생양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등장한 게 위안이다. 싼 위안이 미국의 산업을 공동화(空洞化)하고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주장이다.

예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일본과의 무역적자가 마구 치솟을 때였다. 결국 1985년 9월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선진 5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엔화의 절상에 합의했다. 이른바 플라자 합의다.

그해 연말까지 엔화는 30%나 평가절상됐다. 그러나 미국은 끝내 무역적자를 줄이지 못했다. 무역적자는 환율 말고도 수입장벽과 자본유출 규제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엔화 절상 요구를 미국의 경제적 항복으로 간주해 내심 으쓱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당시 일본은 고립무원이었다. 이른바 '일본 두들기기'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미국의 공격은 일방적이고 전방위였다.

당시의 엔처럼 위안이 저평가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안에 대한 미국의 압력은 엔의 경우와 그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엊그제 위안을 섣불리 만졌다가는 중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의 안정을 해칠 것이라며 미 정부가 신중하도록 요구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중국의 부실채권 정리와 금융시장 정비가 급선무라고 했다. 그런 다음에 단계적으로 변동폭을 넓혀가라는 권고다. 중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임을 잊지 말라는 주문도 했다. 중국의 전반적인 무역수지는 균형을 이루는 추세이니 결코 위안이 저평가되지 않았다는 변호도 있다.

여전히 미국의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나 되지만 생산성이 높아져 제조업의 일자리만 줄었을 뿐이란다. 중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나아가 중국의 무역흑자 중 상당부분은 중국에 직접 투자한 미국 기업의 성과라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미국 내에서조차 중국을 두둔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의 경제적 안정에 이해가 걸린 미국 기업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엔 지난 4년간 1천8백억달러의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쏟아져 들어왔다.

물론 그 때문에 위안의 평가절상 압력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중국 경제는 중국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숙제가 되기도 했다. 경제안보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위안화 시비에 그 시사점이 엿보인다.

이재학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