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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수의 에코사이언스

1억 아파트와 1㎥의 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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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서울 반포동의 한 아파트가 3.3㎡당 1억 원 넘게 거래가 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토교통부가 거래가를 부풀린 업(up)계약이 아닌지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사실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은 공중에 떠 있는 작은 공간을 얻는 일이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이란 말처럼 콘크리트 벽·바닥이란 실체(色)를 샀지만, 본질(空)은 몸을 뉠 공간을 산 것이다. 커피잔이 필요한 것도 커피를 채울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전용면적이 59㎡인 반포동 아파트의 천장 높이가 2.5m라면 전체 공간은 147.5㎥(세제곱미터)가 된다. 매매가격이 24억5000만원이었으니, 이 아파트 공간 1㎥의 가치는 1661만 원인 셈이다. 아파트 위치에 달렸겠지만, 과연 합당한 가치일까.

에코사이언스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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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접하는 1㎥의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지리산 청정 공기 8L를 압축해 담은 ‘공기 캔’ 하나 가격은 1만5000원이다. 1㎥(1000L)이면 187만5000원이다. 물값도 보통 1㎥ 단위로 따진다. 같은 물이라도 댐에 저장된 상수원수는 ㎥에 약 50원, 정수한 수돗물 값은 800원, 시중의 먹는샘물 1㎥는 30만 원쯤 된다. 쓰고 난 생활오수라면 오히려 ㎥당 450원의 하수도 요금을 내고 처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20L 종량제 봉투의 전국 평균 가격이 478원인 점을 고려하면 생활 쓰레기 1㎥는 마이너스(-) 2만3900원꼴이다. 집을 온통 쓰레기로 채우는 저장강박증 환자의 행동은 아까운 공간을 낭비하는 것과 다름없다. 만일 1㎥를 순금으로 채우려면 19.3t(8300억원 어치)이 필요하지만, 그만한 ‘금괴’는 한국은행 지하 금고에서도 볼 수 없다. 한국은행은 2004년 금괴를 모두 런던 영란은행(BOE)에 맡겼다.

이래저래 1㎥의 가치가 반포동 아파트를 뛰어넘기는 어렵지만, 책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책상 위에 놓인 평범한 책(22㎝×15㎝×2㎝)이라면 1㎥에 1500권이 들어간다. 한 권에 2만원이면 3000만 원어치다. 당(唐)시인 두보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야 한다”고 했다. 요즘 기준으로 5㎥, 7500권쯤 될까. 그러니 집안에 책 쌓아놓은 걸 두고 저장강박증이라고 타박하지는 마시라. 책은 마음을 채우는 양식일 뿐만 아니라,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